
샌프란시스코 한인사회를 이야기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교회와 성당이다.
지금이야 한국 뉴스도 실시간으로 보고 한국 음식도 쉽게 주문하지만, 1980~90년대 미국에 정착한 한인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으로 들어온 한인 이민자들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 도착해서 집을 구하는 것부터 자동차를 사고, 직장을 찾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까지 모든 게 낯설었다.
이때 큰 역할을 했던 곳이 한인교회와 한인성당이었다.
일요일에 예배나 미사만 드리는 곳이 아니었다. 교회에 가면 어느 동네 아파트가 괜찮은지, 어디에서 중고차를 사야 하는지, 누가 직원을 구하는지 같은 생활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세탁소, 마켓, 부동산, 보험회사 정보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새로 이민 온 사람이 교회에 나갔다가 일자리를 소개받고, 몇 달 뒤에는 중고차를 사고, 아이들 학교까지 소개받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천주교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샌프란시스코 한인 가톨릭 공동체는 196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성당에서는 미사뿐 아니라 친목회, 한글학교, 청년모임, 각종 행사 등이 열렸다.
1980~90년대가 되면서 한인들의 생활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식당, 세탁소, 마켓 같은 자영업에서 출발했던 가정의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회계사 같은 전문직으로 진출했다.
그러면서 한인들의 거주지역도 달라졌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집을 구입하면서 Daly City나 East Bay로 이동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가정은 South Bay와 산호세 지역으로 내려갔다. 실리콘밸리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한국인 전문직 이민자들도 들어왔다.
그렇게 30~40년이 흘렀다. 1985년에 35살이었던 이민자는 지금 70대 중후반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자녀는 이제 40~50대가 됐다.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 한국어는 부모의 언어일 뿐 생활의 중심 언어는 영어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오래된 한인교회와 성당이 새로운 고민을 맞게 된다.
1세들은 여전히 한국어 예배와 미사를 원하지만 2세와 3세는 영어가 훨씬 편하다. 한국 사람끼리 모여야 생활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시대도 지나갔다. 젊은 세대는 직장과 결혼을 따라 샌디에이고, LA, 시애틀, 뉴욕, 텍사스 등 어디로든 이동한다.
그래서 오래된 한인 종교기관에 가보면 예전보다 노년층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 곳이 있다. 1980년대에 아이들 손을 잡고 교회에 왔던 젊은 부부들이 이제 백발이 되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것도 이민의 한 모습이다. 1세가 어렵게 만든 한인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제 영어권 미국 사회로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오래된 한인교회와 성당을 보면 단순한 종교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안에는 빈손으로 미국에 와서 가정을 만들고, 사업을 시작하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며 살아온 한인 1세들의 40~50년 인생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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