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으로 이민 올 때 가장 걱정됐던 건 '영어'였다.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말을 듣게 될지 막막했다.
하지만 막상 응급실을 직접 가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진짜 무서운 건 영어가 아니라 ‘미국 의료 시스템’ 그 자체였다는 걸.
어느 날 갑자기 복부에 심한 통증이 왔다. 참으면 괜찮겠지 싶어 진통제를 먹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더 나빠졌다.
저녁도 안먹고 견디고 있는데 밤이 깊어지자 더 심해지고 숨도 쉬기 힘들어져서 부랴부랴 결국 응급실을 찾게 됐다.
도착한 곳은 호놀눌루 집근처 병원 응급실. 병원은 의외로 분주했다. 나는 접수대에 다가가 겨우 증상을 설명했다.
“Severe stomach pain… I can’t breathe well”
직원이 정보를 입력하더니, 대기표를 주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기다림의 시작.
한국 같았으면 급하게 진료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응급실은 ‘긴급함’의 기준이 다르다.
생명이 위태롭지 않다면, 아무리 아파도 기다려야 한다.
나는 3시간을 앉아 있었다. 주변에서 신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도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이러다 일이 더 커지는건 아닌가 싶었다.
결국 진료실로 불려갔다. 의사는 간단한 문진 후 기본 혈액 검사와 CT를 권했다.
약간의 설명, 짧은 대화, 그리고 다시 대기. 검사실, 또 대기. 진료 자체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총 5시간 만에 진단을 받고 진통제와 항생제를 처방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다행히 맹장이 아니지만, 추가 증상이 나타나면 다시 오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면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진짜 문제는 며칠 후 집으로 날아온 청구서였다.
그날 밤의 기억보다 청구서가 더 충격이었다
첫 번째 청구서: 병원 응급실 기본 진료비 $1,950
두 번째 청구서: CT 촬영비 $3,600
세 번째 청구서: 혈액 검사 및 진단비 $1,200
네 번째 청구서: 전문의 컨설팅 $700
총합 약 7,450달러
보험이 있었다. 다행히 보험사에서 일부 금액을 부담해줬지만, 그럼에도 내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약 $2,300.
아무리 보험이 있어도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다. 그제야 미국 사람들이 왜 병원 가는 걸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많은 이민자들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지만, 진짜 위협은 의료 체계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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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본인 부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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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치료가 보험 적용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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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마다 가격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
이런 정보들이 전혀 안내되지 않고, 대부분의 비용은 진료 후에야 ‘편지’로 통보된다. 심지어 같은 검사라도 병원마다, 시간대마다 가격이 다르다.
미국 병원에선 환자가 고객이 아니라 ‘보험 청구 대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민자라면,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꼭 아래의 것들을 준비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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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이해하기
단순히 ‘보험이 있다’고 안심하지 말고, 본인부담금(deductible), 코페이(co-pay), 아웃오브포켓(out-of-pocket max) 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
Urgent Care와 ER의 차이
응급실은 생명 위협 상황일 때만 가고, 경미한 질병은 Urgent Care나 Walk-in Clinic을 활용하는 게 훨씬 저렴하다. -
긴급 시 사용할 문장 준비
통증 부위, 증상 강도, 복용 중인 약 등을 영어로 미리 메모하거나 앱에 저장해두면 응급상황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미국은 아프면 안 되는 나라야.”
많은 이민자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진짜 현실이다.
영어 못해도 괜찮다. 통역 앱 있고, 제스처로도 통한다.
하지만 의료비, 보험 구조, 병원 이용 방식은 미리 알고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든 큰 비용과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미국 병원, 겪어보면 안다.
영어보다 더 무서운 건 시스템 그 자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