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국민 배우 안성기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향년 74세. 한국시간 2026년 1월 5일 아침,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식사 도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심정지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고 하네요.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 하면서도 끝까지 연기를 놓지 않았던 분이라 더 믿기지 않습니다. 요즘 74세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많은 나이인데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안성기라는 이름은 단순히 배우 한 명이 아니라 한국 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1952년 1월 1일 새해 첫날에 태어나서,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스크린에 등장했습니다. 다섯 살 꼬마였던 그가 어느새 아역 배우로만 70편이 넘는 작품을 찍고, 성인이 되어서도 단 한 번도 카메라 앞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군 복무와 대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1980년대 한국 영화의 가장 힘든 시기와 가장 뜨거운 도약기를 모두 버텨냈고 그렇게 그는 한국 영화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보여준 청년의 고민, 만다라의 깊은 사색, 고래사냥의 자유로운 방황. 그 시절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안성기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의 이름 석 자는 그 자체로 영화의 신뢰도였고, "안성기 나온대"라는 말 한마디에 극장으로 향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90년대에도 그는 남부군, 투캅스 같은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들을 오가며 존재감을 지켰고, 2003년 실미도를 통해 한국 영화 최초 천만 관객 시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국민 배우라고 부르는 이유는 연기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평생 영화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았습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조용히 봉사했고, 영화계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앞에 나서기보다는 묵묵히 중심을 잡아주던 어른이었습니다.

투병 중에도 가발을 쓰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 밝게 웃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할 만큼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2024년 병세가 악화되기 직전까지도 다음 작품 이야기를 하며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던 천생 배우였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그가 남긴 수많은 인물들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순박한 청년, 고뇌하는 지식인, 인자한 아버지, 묵직한 지도자. 안성기가 연기한 얼굴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연기는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진심이었고 눈빛 하나로 시대를 위로하던 배우였습니다. 74년 인생 중 거의 70년을 영화와 함께한 사람. 이제는 그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고 쉬어도 되는 순간이 온 것 같습니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안성기라는 이름은 한국 영화가 존재하는 한 계속 살아 있을 겁니다. 그의 수백 편의 영화 속에서 그는 여전히 웃고, 울고, 걷고, 달리며 우리에게 말을 걸 것입니다.

영화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결국 우리에게 영화 그 자체로 남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영원한 국민 배우 안성기. 당신이 있어서 한국 영화는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