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창고 앞 트럭 램프 옆에 서서 동부로 보낼 물건 리스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인보이스랑 박스숫자가 자꾸 안 맞아서 땡볕에 괜히 짜증이 올라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맞은편 히스패닉 가구회사 웨어하우스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직원 몇 명이 황급히 길가로 뛰어나오더니 911에 전화를 거는 게 보였다. 무슨 사고가 난 게 분명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새로 들어온 작업자가 철제 사다리를 들고 벽면 패널 작업을 하던 중이었단다. 그런데 공사로 오픈 되어있던 고압선에 사다리가 닿으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감전됐다. 사람 말로는 "튕기듯" 바닥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전기가 확 통하면서 몸이 튀었다는 거다.
구급차는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한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한텐 그 10분이 아마 한 시간처럼 느껴졌을 거다. 구급대원들이 산소 마스크를 씌우고, 들것에 조심스럽게 눕혀 실어 가는데...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고, 의식도 있었다고는 했다. 하지만 상태는 중태.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미국 전기는 110이라서 감전돼도 그래도 버틸 만하지 않냐"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에서 쓰는 전기 얘기다.
공장이나 웨어하우스 같은 상업용 시설은 다르다. 220볼트는 기본이고, 277볼트, 480볼트까지도 쓴다. 보통 '3상 전력'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 전기는 장난 아니다. 사고 한 번 잘못 나면 그냥 끝이다. 감전이 아니라 치명적인 사고다.
사고가 난 히스패닉 가구회사 웨어하우스 매니저는 인부가 감전으로 병원에 실려갔기때문에 OSHA에 보고해야 한다며 스트레스를 받은듯했다. 보고안하고 넘어가면 벌금이 만달러가 넘기 때문에 꼭 해야되는거다. 그리고 심각한 산업재해가 발생한거라고 볼 경우 꼭 OSHA가 현장에 나오게된다.
사실 나도 미국 와서 처음 창고 일 시작할 땐 몰랐다. 그런데 회사에서 자꾸 무슨 서류 내라 그러지, 포크리프트는 면허 있어야 된다 그러지, 사다리 쓸 땐 하네스를 매야 한다느니... 처음엔 그냥 "왜 이렇게 까다롭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모든 걸 지켜보고 관리하는 기관이 바로 OSHA. 미국 산업안전보건청, 영어로는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미국 근로자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지 않게 하려고 생긴 연방 정부 기관이다. OSHA Act라는 법을 근거로 해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공장, 창고, 건설 현장, 심지어 병원까지, 수많은 작업 환경을 감독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고에서 감전사고 나고, 건설현장에서 추락 사고 나고, 식당 주방에서 뜨거운 기름 튀어 화상 입고... 이런 것들 다 OSHA 규정이 막으려는 일들이다. 요즘은 뭘 하나 새로 설치하거나 직원을 새로 들일 때마다 "이거 OSHA 기준 맞지?"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솔직히 귀찮긴 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그 기준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끼게 된다.
OSHA는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이 나라가 매일 수천, 수만 명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이유, 그건 이런 규정들이 최소한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지키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다. 안 지켜서 누가 다치면, 그땐 '귀찮음'이 아니라 '책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포크리프트 운전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부터 매는 걸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