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 귀찮어 하던일을 하게 되면 또 합니다. 막상 시작하면 별거 아니고 왜 미뤘나 싶을 정도로 금방 끝나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기 전에는 그렇게 귀찮습니다. 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도 않고, 안 하면 나중에 더 귀찮아진다는 것도 다 아는데, 그 순간만큼은 몸이 안 움직여요. 이게 참 이상한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우선 사람은 시작을 제일 싫어하는 동물인 것 같아요. 이미 굴러가고 있는 일에는 올라타기 쉬운데, 멈춰 있는 걸 처음 밀어내는 건 유난히 힘들어요. 운동도 그렇고, 서류 정리도 그렇고, 집에 뭐 하나 설치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막상 하면 30분, 1시간이면 끝나는 일인데, 그 앞에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게 그렇게 귀찮습니다. 뇌가 일을 과대평가하는 거죠. 실제 노동보다 귀찮음의 이미지가 훨씬 크게 느껴져요.

또 하나는 불확실함이에요. 하기 전에는 결과가 머릿속에서 흐릿합니다. 잘 될지,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 중간에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뇌는 본능적으로 "지금 말고 나중에"를 선택합니다. 지금은 비교적 편안하니까요. 반면에 막상 시작하고 나면, 일이 구조를 드러내요. 아, 이건 여기까지고, 이건 이렇게 하면 되네 하고 윤곽이 잡히죠. 그 순간부터는 귀찮음이 확 줄어듭니다.

귀찮음에는 감정도 섞여 있어요. 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의무고, 책임이고, 대비예요. 보험 들기, 점검하기, 준비하기 같은 것들이죠. 이런 일들은 성취감이 바로 오지 않아요. 대신 "아무 일도 안 생기면 다행"이라는 보이지 않는 보상을 줍니다. 인간은 이런 보상을 잘 못 느껴요. 눈앞에 티가 안 나니까요. 그래서 미루게 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아직 안 당했기 때문에 귀찮은 겁니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마음속 어디선가 '설마 나한테'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요. 이 생각이 귀찮음을 정당화해 줍니다. 지금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낙관이요. 그런데 한 번 겪고 나면 달라집니다. 그때는 귀찮아도 합니다. 오히려 빨리 합니다. 경험이 귀찮음을 이겨버리는 거죠.

그래서 귀찮음은 게으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미래를 대하는 방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는 현재의 편안함을 너무 좋아하고, 미래의 위험을 너무 얕게 계산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기 전에는 늘 귀찮고, 하고 나면 늘 별거 아닌 일이 됩니다. 이 패턴을 알면서도 계속 반복하는 걸 보면, 이건 성격이 아니라 구조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기 전의 귀찮음은 진짜 귀찮음이 아니라, 그냥 시작 앞에서 생기는 착각일지도 모른다고요. 귀찮음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면 평생 안 하게 되고, 귀찮은 상태로 그냥 시작해야 일이 굴러간다는 걸요. 하게 되면 한다는 말, 그 말이 생각보다 인생의 진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