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텍사스에 여름이 오면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듯한 날씨가 시작된다.

보통 6월말이 되면 기온은 화씨 95도를 매일같이넘기고, 습도는 얼굴에 분무기로 뿌린듯 끈적거린다.

이러다가 7월이 되면 밤낮으로 무더위가 이어지고 폭풍처럼 내리는 비가와도 이틀만만 지나면 다시 푹푹찌는 더위가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휴스턴은 ‘여름 생존 스킬’이 꼭 필요한 도시인데, 여기 사람들은 똑똑하게 그 해답을 찾았다.

그건 바로 지하 터널 시스템 (Houston Downtown Tunnel System).

휴스턴 다운타운에는 일반 여행자나 이민자가 잘 모르는 거대한 지하 터널 네트워크가 있다.

길이만 무려 6마일(약 10km)이 넘는다. 이름하여 “Houston Downtown Tunnel System.”

밖에서 보기엔 빌딩 숲뿐이지만, 그 아래엔 마치 또 하나의 도시가 펼쳐져 있다.

이 터널 시스템은 그냥 지하통로가 아니다. 오피스 건물과 호텔, 은행, 쇼핑몰, 식당, 커피숍, 미용실, 우체국까지 연결돼 있다.

예를 들어 아침 8시쯤 도심 사무실로 출근해서 점심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지하에서 식당을 찾아가고, 오후에는 커피 한 잔 사들고 은행 업무도 볼 수 있다. 심지어 퇴근하면서 미용실에 들렀다 갈 수도 있다.

이 시스템 덕분에 폭염의 날, 소나기가 오는날, 그리고 습기가 미친 듯이 올라오는 날… 이 터널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이 터널 시스템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계획된 건 아니었다.

1930년대, 두 개의 고층빌딩 사이에 직원들이 비 오는 날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단순한 연결 통로가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게 너무 편리하니까, 시간이 흐르며 하나 둘 연결되고 또 연결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터널망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금은 80개 이상의 빌딩이 이 지하 터널로 연결돼 있다. 단점은 여행자들은 어느 빌딩에 연결된지 몰라서 찾기 어렵다는 점.


구글맵 쓰면 쉽게 찾을수 있으니 기술이 좋긴 좋아졌다. 그리고 들어와 보면 터널 안 풍경도 생각보다 훨씬 현대적이다.

AC 냉방은 빵빵하고, 네온 간판 아래 체인점과 로컬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헤드셋을 끼고 커피를 마시며 바삐 움직이고, 마치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건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침, 점심시간에는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지하도로는 밖에서는 간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보통 빌딩 1층 로비를 통해야 입장 가능하다.

즉, “나만 알고 싶은 비밀 통로”처럼 작동한다.

또, 밤에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주말도 휴무인 곳이 많아서 평일 낮 시간 외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하 터널은 휴스턴 사람들이 더위를 견디는 비밀 병기다.

지하 세계 덕분에 정장 입은 직장인들이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점심 먹고 돌아올 수 있는 것.

나는 처음 이 터널을 경험했을 때 마치 영화 ‘인셉션’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위와 아래가 다른 도시 같고, 뭔가 휴스턴이 숨겨둔 보물을 발견한 느낌.

지하라고 해서 답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쾌적하고, 이동 동선도 잘 설계돼 있어 “지하 도시”라는 표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만약 여름철에 휴스턴 다운타운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구글맵보다 현지인에게 "터널 어디서 들어가요?" 하고 물어보는 게 빠르다.

그리고 한 번쯤은 이 숨겨진 도시를 "지상보다 나은 지하"로 느껴보시길 추천한다.

유투브에도 많은 정보가 있으니까 참고하면 좋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