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휴스턴 다운타운 지하도로 길을 걷다 보면, 정말 다양한 커플들을 보게된다.

키가 훤칠한 백인 남자와 아담한 동양계 여성, 텍사스의 주류(?)인 히스패닉 남성과 백인 여성 (이런부류는 크게 위화감도 없다. 백인여성으로 보여도 알고보면 히스패닉계인 경우도 많고), 건장해 보이는 흑인 남자와 라틴계 여성 등등. 미국 처음 온 후로는 다양한 인종이 믹스된 커플들과 그들의 아기들 보는것이 신기했는데,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아, 또 혼혈 베이비 하나 생기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딱히 잘 안 보이는 조합이 하나 있다. 바로 흑인 여성과 타 인종 남성 커플이다.

백인 남성 옆에 있는 흑인 여성... 좀 드물다. 있다면 남성이 속해있는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스페인 혈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아시아 남성 옆에 있는 흑인 여성? 거의 못 봤다. 히스패닉 남성과 흑인 여성? 글쎄... 내 가 본 기억으로는 손에 꼽는다.

이게 단순히 눈에 띄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커플 매칭 웹사이트의 통계도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흑인 여성은 타 인종과 가장 적게 데이트하는 집단이다.

반대로 가장 타 인종과 많이 엮이는 조합은 백인 남성과 아시아 여성. 뭐 이건 누구나 다 아는 ‘미국 데이트 공식’처럼 돼버렸다.

그럼, 아시아 남성은 어땠을까?

나도 아시아 남성이다 보니 관심 있게 지켜봤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 남성은 미국 데이팅 시장에서 ‘존재감이 아주 낮은 캐릭터’였다. 영화에서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보이더라도 늘 무술가 이거나 너드 역할이었다. 덤으로 여자한테 말도 잘 못 거는 설정. 그러니 당연히 타 인종과의 데이트 확률도 낮았다.

하지만 2000년대를 지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아시아 남성들이 스스로 몸을 키우기 시작했고, 패션에도 신경 쓰고, 소셜 스킬도 끌어올렸다. K‑드라마나 K‑팝이 한몫 했는지는 몰라도, 이제 미국에서도 아시아 남성은 멋지고 매력적인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시아 남성과 라틴 여성, 아시아 남성과 백인 여성 커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보기 드문 조합이 바로 흑인 여성과 타 인종 남성 커플이다. 왜 그럴까?

일단, 미국의 오랜 인종 역사와 편견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흑인 여성은 강하고 독립적이라는 인상이 있는데, 이게 어떤 남성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전통적인 아시아 문화권에서 자란 남성들에게는 그 강인함이 ‘상대적으로’ 거칠게 보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미디어 대표성의 문제다.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 커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 거의 없다. 대중문화에서 보이지 않으면 현실에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결국 ‘가능성’ 자체를 못 떠올리는 것이다. 반대로 백인 남성과 아시아 여성 조합은 영화, 드라마, CF, 유튜브 어디서든 쉽게 보인다. 익숙한 건 행동으로 옮기기 쉽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있다. 어떤 흑인 여성들은 타 인종 남성에게 "나한테 관심이 없을 거야"라고 먼저 선을 그어버리기도 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흑인 남성과 함께 해야 한다"는 문화적 기대감이 아직도 남아있기도 하다. 그게 자부심이자 무언의 압박이 되기도 한다.

결국, 사랑 앞에 인종이 문제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열린 연애 시장’에 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 자기만의 벽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벽은 허물 수 있다. 아시아 남성이 변화했듯이, 미국 사회도 천천히 변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그 변화를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 2100년이 되면 인종구별없는 혼혈사회로 구성될거라고 미래학자들의 주장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2100년도에 누가 이 글을 읽는다면, 이런 얘기가 ‘무슨 옛날 이야기냐’는 소리나 듣게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