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미국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살아오며 수많은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류츠신의 소설 원작 삼체 시리즈는, 그 화려한 비주얼과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복잡한 플롯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철학적 깊이는 결여되어 있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삼체는 겉으로는 우주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미래 문명 서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 세계는 인간 정신에 대한 이해도, 종교와 신념에 대한 존중도 전무한 공산주의적 이념의 시뮬레이션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등 어떤 종교적 가치도 이 세계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이성과 과학, 전제적인 정치 방식과 권력만이 질서를 유지합니다. 인간 내면의 본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윤리나 도덕은 완전히 배제된 세계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기독교나 신이라는 개념이 철저히 배제되었고, 인간 문명의 ‘믿음’이라는 요소가 단순한 미신이나 퇴행적 신념으로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 소설과 드라마는 철저히 공산주의적 세계관 안에서만 논리와 윤리를 구성합니다.

류츠신이 제시하는 ‘삼체 세계’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3개의 항성계가 이루는 환경에서 기온이 무작위로 바뀌고 생명이 예측 불가능한 위기에 반복적으로 처하는 이 삼체성은, 마치 문화혁명기와 그 이후의 중국 사회의 반복된 혼돈을 은유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생존하는 존재들은 자신들의 몸까지 전기회로의 부품으로 구성해 가며 오직 과학, 기술, 그리고 전제주의적 집단지성만을 숭배하며 ‘믿음’을 조롱합니다.

이는 현대 중국이 보여주는 인간성의 실종과도 맞닿아 있죠.

삼체 세계는 극단적인 과학주의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혼도 없고, 도덕도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 종교는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심리적 허구일 뿐이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려 애씁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라온 이들에게는 불편할 정도로 종교에 대한 조롱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시가 반복됩니다.

이는 단순한 SF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중국 사회의 왜곡된 자기 투영입니다. 공산당은 여전히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역사적 오류를 국가 전체의 교훈으로 삼기보다 철저히 통제합니다.

반면, 그들은 서방 세계의 과학기술과 문화는 끊임없이 탐하고 모방합니다. ‘지구’라는 설정은 마치 고급 문명과 도덕을 지닌 서방 세계의 은유이고, ‘삼체 세계’는 자기들 공산주의 체제의 불안정성과 혼란을 정당화하려는 미화처럼 느껴집니다.

더 큰 위선은 여기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이념을 신봉하는 중국의 엘리트들은 실제로 자기 자녀들을 모두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서구 국가로 유학 보내고 이민시키고, 그 막대한 자산을 바탕으로 뉴욕, 런던, 밴쿠버, 심지어 서울의 부동산을 사들입니다. 하느님은 없다, 믿음은 미신이다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은 온통 서방적 가치와 기독교 기반의 문명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중성의 절정은 삼체 드라마 속 ‘구원’의 개념이 과학기술에만 기반해 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도, 인간 내면의 회복도, 용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존재하는 건, 철저한 계산과 공리주의적 생존 전략뿐입니다.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보여주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체제 중심’의 사고와도 일맥상통하죠.

중국인들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사건 중 하나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의 세계적 인기에 따라 중국에서도 이 작품을 영화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선봉에 섰던 유즈 게임즈의 린치 회장이 2020년 12월 25일 독살당한 사건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린 회장은 '삼체'의 영화화를 추진하던 인물이었지만, 그를 죽인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회사 부사장 쉬야오였습니다.

쉬야오는 린 회장의 급여 삭감에 불만을 품고, 커피와 위스키, 생수에 독극물을 탄 것은 물론, 유산균이라 속인 독극물 알약까지 먹이는 치밀한 방식으로 그를 독살했습니다. 이 사건은 중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막대한 돈이 오가고, 표면적으로는 첨단 산업과 문화를 창조하는 듯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극심한 불신, 권력 다툼, 인격 경시, 생명 경시 문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체 드라마 속 ‘구원’의 개념이 과학기술에만 기반해 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도, 인간 내면의 회복도, 용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존재하는 건, 철저한 계산과 공리주의적 생존 전략뿐입니다.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보여주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체제 중심’의 사고와도 일맥상통하죠.

심리상담을 하며 늘 느끼는 것은, 인간은 논리와 이성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복과 성장은 믿음, 용서, 연대, 그리고 신념 같은 비이성적 가치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삼체 세계엔 그런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계산된 생존'만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반물질이나 9차원 양자공학 같은 초현실적인 과학이 아니라, 고통속에서도 사랑과 신념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이 드라마는 이해하지 못한 채, 오히려 조롱합니다.

넷플릭스가 이처럼 편향적이고, 철학적 깊이는 얄팍하며, 문화적으로도 특정 이념에 경도된 작품을 대중 앞에 ‘미래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면, 인류 문명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질문해야 합니다.

삼체라는 드라마가 묘사하는 세계는 정말 ‘미래 문명’입니까? 아니면 중국 사회의 병든 현재를 투사한 허상입니까?

그리고 그 허상을 포장한 채,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퍼뜨리는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