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50대에게 휘트니 휴스턴은 단순히 노래 잘하는 외국 가수가 아니었다.
80년대 말 그리고 90년대 뜨겁던 청춘의 한 장면을 채우던 배경음악이었고, 좌절하던 때마다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려주던 위로 같은 존재였다. 라디오에서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괜히 운전 속도가 느려졌고, 집에 혼자 있을 때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하루의 피로를 조용히 정리해 주었다.
오늘은 마음 한구석에 오래 묻어 두었던 그 이름, 휘트니 휴스턴 이야기를 조금 꺼내 보고 싶다.
1985년, 그녀의 등장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은 단숨에 세상을 사로잡았다. 가스펠 가수였던 어머니 시시 휴스턴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달랐다. Saving All My Love for You, Greatest Love of All 같은 노래를 부를 때 그 맑고 깊은 울림은 듣는 사람의 가슴을 단번에 흔들어 놓았다.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다가오는 목소리였고, 그 감정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1992년, 영화 보디가드.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케빈 코스트너와 공동 주연으로 나온 영화. 정적을 가르며 시작되는 I Will Always Love You의 전주, 그리고 후반부에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고음. 그 순간 극장 안의 공기가 바뀌었고,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인 채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 시절 차 안에는 항상 그녀의 카세트테이프가 꽂혀 있었고, 집집마다 스피커에서는 휘트니의 노래가 흘렀다. 그녀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무대 위만 화려한 법이다. 무대 위에서 세상을 다 가진 듯 빛나던 그녀였지만, 무대 뒤의 삶은 점점 무너져 갔다.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 생활은 늘 불안했고 언론은 그녀의 고통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그녀가 헤어나오지 못한 약물 문제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었고 팬들의 걱정과 세상의 비난 속에서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왜 그렇게 일찍 떠나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건, 그 외로움이 우리네 인생의 무게와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 2월, 그녀가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한다. 전 세계가 잠시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고, 라디오에서는 하루 종일 그녀의 노래만 흘러나왔다. 사랑에 설레던 밤에도, 이별하고 술잔을 기울이던 날에도, 삶이 너무 힘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도 늘 그녀의 목소리가 곁에 있었다.
지금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의 공기와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몸은 떠났지만 목소리는 늙지 않았다. 오늘 퇴근길에 그녀의 노래를 한 곡 틀어 보길 권하고 싶다. 한 시대를 함께 건너온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따뜻한 울림이, 다시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 줄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그렇게 지금도 우리 곁에서 노래하고 있다.


니콜키크드만






하와이 관광지 정보 | 
슈퍼 푸드를 찾아서 | 
Good Karma | 
미국 전지역 생생뉴스 | 
플릭스 플렉스 TV | 
다코타맨 블로그 감사 | 

미스터 미국 중서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