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 다니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다.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있는 VA 병원, 그러니까 미군 재향군인 병원에서 DAV(Disabled American Veterans) 관련 병원 행정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의사나 간호사처럼 직접 환자를 치료하진 않지만, 병원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쪽이다. 행정, 환자 등록, 보험비용처리, 의무 기록 관리... 이쪽 업무를 7년동안 해오면서 수많은 군 출신 의사들을 지켜봤고, 또 지금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인 젊은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눠왔다.

내가 시간을 들여서 이 블로그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만약 당신이 아는 사람이 지금 미국 의대에 가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성적도 상위권이고, 진짜 진심으로 의사가 되고 싶다면 아직 기회가 있다.

그것도 '군대'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미국 군 병원과 관련된 행정일을 하면서 HPSP와 USUHS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다.

HPSP는 군에서 운영하는 장학금 제도인데, 민간 의대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생활비까지 주는 시스템이다. 나도 처음엔 "군대가 의대생을 왜 후원해?" 싶었는데, 미국은 생각보다 실용적이다. 나라를 위해 복무할 군의사를 미리 키워두기 위해 실력 있는 학생들에게 먼저 투자하는 거다.

이 장학금을 받으면, 의대 등록금 전액을 군이 대신 내준다. 그뿐만이 아니라 매달 2천 불이 넘는 생활비도 들어온다. 교재비, 실습비, 심지어 건강보험까지. 그래서 HPSP 받는 친구들 보면 민간 의대생이지만 경제적 부담은 거의 없다. 대신 조건이 있다. 졸업 후 일정 기간, 보통은 4년 정도 군 병원에서 의사로 복무해야 한다. 이건 계약이고, 단순히 돈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HPSP와는 다른 길도 있다. 바로 USUHS, 정식 명칭은 Uniformed Services University of the Health Sciences. 이름부터 '군대 냄새'가 풀풀 나는데, 진짜 군 의과대학이다. 메릴랜드주 Bethesda에 있고, NIH 바로 옆에 있다. 여기 들어가면 입학과 동시에 군 장교로 등록된다.

시작하면 바로 소위(O-1)로 계급이 주어진다. 그리고 월급도 나온다. 수업 듣고 공부하면서도 기본급이 있고, 주거 보조도 있고, 장교 의료보험도 제공된다. 대신 여긴 더 빡세다. 학교생활 중간중간에 군사훈련도 받고, 여름엔 리더십 훈련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졸업 후 복무는 7년 이상. 대신 졸업하면 곧바로 군 병원에서 전문의 레지던시를 받을 수도 있고, 진짜 장기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 옵션이다.

요즘 이곳 VA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보면, HPSP 출신 의사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들은 보통 4년 복무 마치고 나와서 VA나 민간 병원으로 경력을 옮기는데, 커리어상으로 큰 불이익은 없다. 오히려 군 병원에서 워낙 다양한 환자를 접하다 보니 실전 경험이 많고, 리더십 훈련도 잘 되어 있어서 병원 관리자들이 좋아한다. 민간 병원에서도 "이 사람은 군 출신이니까 일단 신뢰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다만, 군에서 수련받는 과정은 민간과는 좀 다르다. 전문과를 선택할 때 제한이 있거나, 지원 경쟁이 치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피부과나 안과 같은 인기 과는 군 내에서도 들어가기 어렵다. 하지만 가정의학, 내과, 외과, 마취과 같은 필수과들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훈련받을 수 있다.

또 하나, 복무지는 랜덤이 아니다. 어느 정도 선택지가 있긴 하지만,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미군 기지 중 한 곳에 배치받는다. 미국 내는 물론이고, 독일, 일본, 한국(평택, 오산 등), 하와이 같은 데도 있고, 해군이라면 군함에 탑승해서 다니는 경우도 있다. 전쟁 지역으로 가는 건 가능성은 낮지만 없진 않다. 어쨌든 군복무니까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가난하지만 똑똑한 젊은이들'이 미국 군대 시스템을 통해 인생을 바꾸는 걸 자주 봤다.

이민자 자녀가 엄청난 학비나 학자금 융자가 벅차다보니 미군에서 장학금 받고 군 복무 마치고 펠로우십까지 받아서 병원에서 잘나가는 전문의가 된 사례도 있었다.

그 친구가 말하더라. "나 같은 사람이 미국에서 의사가 됐다는 게 시스템 덕분이라는 걸 잘 알기에 열심히 하게된다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만약 당신이 지금 돈이 없고, 인생이 좀 답답하고, 꿈이 있는데 방법을 몰라 막막하다면... 알려주고 싶다.

미국은 군대를 통해서라도, 능력 있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는 나라라는 걸.

당신이 정말 간절하다면, 그리고 힘든 의사과정을 견딜 머리와 실력, 체력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리쿠르터를 찾아보라고.

진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에는 아직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