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에서 한인들이 이민 초기에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살기 위한 장사'였습니다.

새벽부터 가발을 진열하던 뷰티서플라이, 샌드위치를 만들던 델리

영어가 서툴고 자본이 부족한 이민자들에게 주류사회 취업이나 전문직은 어려운 일이었죠. 그래서 한인들은 소규모 자영업을 택했습니다. 그렇게 세탁소, 델리, 리커스토어, 뷰티서플라이, 식료품점, 옷가게 같은 업종이 필라델피아 한인 이민사회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1970~80년대에 들어 한인들이 필라델피아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북쪽의 올니(Olney) 지역과 체스넛힐(Chestnut Hill) 인근에는 자연스럽게 한인 상권이 형성되었습니다.

올니의 노스 5번가(North 5th Street)는 한인 자영업의 상징 같은 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시기 한인 이민자들은 대부분 하루 열두 시간 이상 가게 문을 열어놓고 영어가 서툴러도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던 한인 가게들은 어느새 지역 주민들에게 '믿을 수 있는 상점'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가장 흔했던 업종이 델리(Deli)와 식료품점이었습니다. 한인 델리는 흑인과 히스패닉 커뮤니티 사이에서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샌드위치, 커피, 간식, 담배를 팔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소식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 되었죠. 가게 주인은 늘 새벽 5시 전에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 수입은 많지 않아도 손님이 "See you tomorrow"라고 말하며 돌아설 때마다 다시 힘을 냈습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 한인 사회의 또 다른 큰 축을 이룬 업종이 바로 뷰티서플라이(Beauty Supply)입니다.

이 사업은 흑인 여성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미용 관련 제품 판매로 시작됐습니다. 가발, 헤어 익스텐션, 염색약, 화장품, 액세서리까지 모두 다루며, 한인들은 누구보다 세밀하게 시장을 분석했습니다. 한 사람의 스타일을 기억하고,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먼저 소개하는 식으로 단골 고객을 확보했습니다. 이렇게 세운 신뢰는 필라델피아 곳곳에서 흑인 커뮤니티의 필수 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운영했던 업종 중 하나는 세탁소였습니다. 세탁업은 초기 이민자들이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고, 기술만 익히면 안정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종이었습니다. 한인들이 운영하던 세탁소는 대개 부부가 함께 일했고, 손님 이름과 취향을 세세히 기억해주는 서비스 덕분에 단골이 많았습니다.

또한 한인들이 많이 운영했던 리커스토어와 옷가게도 빠질 수 없습니다. 리커스토어는 술, 담배, 간식 등을 함께 팔며 지역의 밤을 지탱했고, 옷가게는 뉴욕에서 들여온 트렌디한 의류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흑인 고객층을 끌어들였습니다.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지역 문화에 맞춘 감각적인 상품 구성이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2세대 한인들은 부모의 가게를 이어받기도 하고, 새로운 업종으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IT 전문가로 성장한 이들도 많지만, 여전히 일부는 부모 세대의 전통을 지키며 자영업을 이어갑니다. 그들에게 가게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가족의 역사이자 정체성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필라델피아 한인 상권의 특징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공존'에 있습니다. 흑인, 히스패닉, 백인 커뮤니티 속에서 한인들은 늘 조심스럽고도 성실하게 관계를 맺었습니다. 문화적 차이로 갈등이 생긴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한인들은 시간을 들여 신뢰를 쌓으며 문제를 풀었습니다. 교회와 지역 단체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가게 수익 일부를 지역 행사에 기부하면서 조금씩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갔습니다.

오늘날 필라델피아의 한인 비즈니스는 예전처럼 눈에 띄게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도시의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40년 전 손수 샌드위치를 만들던 델리, 새벽부터 가발을 진열하던 뷰티서플라이. 그 모든 공간들은 한인 이민자들이 남긴 조용한 흔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