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김지미는 흔한 그당시 방식으로 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 Baton Rouge - 1

김지미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사람마다 반응이 조금씩 다릅니다.

누군가는 "남자편력"이라는 단어를 먼저 꺼내고, 또 누군가는 "그 시대에 보기 드문 강한 여자"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시선이 겹치면서 인생을 설명하는데,  단순히 팔자라는 말로 묶어버리기에는 꽤 아까운 삶이었습니다.

우선 김지미는 누군가에게 기대서 살아가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중심이 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네 번째 결혼이 끝난 뒤 남긴 말이 꽤 유명합니다.

"나는 남편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마누라가 필요한 사람이다."

이 한 문장에 이 사람의 성격이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상황을 주도하고 삶을 이끌어가는 쪽이었습니다. 당시 시대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꽤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시선도 비슷했습니다.

남자를 이상화하거나 의지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바라봤습니다.

"남자는 어린애 같고 부족하다"라는 식의 발언은 그냥 감정적인 말이 아니라,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로 읽힙니다.

좋아하면 함께 살고, 아니면 돌아서는 방식. 그 시절에는 상당히 페미주의가 강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여걸의 삶"으로만 보기에도 한쪽으로 치우친 해석입니다.

당시 사람들 눈에는 네 번의 결혼과 이혼이 평범하게 보일 리 없었습니다. 상대도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영화감독 홍성기,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의사 이종구까지. 이름만 봐도 당대에서 영향력 있던 남성들이었습니다. 그만큼 화려했고, 그만큼 주목받았고, 결국은 모두 이별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타고난 팔자"라는 말도 따라붙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붙여진 별명입니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미모와 사생활, 그리고 반복되는 결혼과 이혼까지 닮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런 비교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일 뿐이다"라는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규정하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 부분이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 기준이 더 분명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김지미의 삶은 둘 중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타고난 팔자처럼 보이는 굴곡도 있었고, 동시에 스스로 선택하며 밀어붙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녀는 상황에 끌려다닌 사람이 아니라, 매 순간 선택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선택이 반복되면서 지금 우리가 보는 이야기로 남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저 정도면 팔자인가, 아니면 성격인가.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조금 단순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정적인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감정과 확신에 따라 과감하게 방향을 바꾸며 살아갑니다. 김지미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더 드라마 같았고, 그래서 더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것입니다.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자신을 남의 기준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면 함께 살고, 아니면 떠난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원칙. 누군가에게는 파란만장한 인생으로 보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유롭게 산 인생으로 보입니다.

결국 김지미는 흔한 방식으로 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