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산 지도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건너와 엘에이에서 자리 잡고 살아왔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름에 비 내리는 걸 한손에 꼽을 정도밖에 기억 못 하겠습니다.

여기 LA에서 준글룸인 6월 그리고, 7월, 8월... 여름인데도 하늘은 매일 똑같아요.

파란 하늘에 해가 쨍쨍, 비 구경은 정말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죠.

사실 처음에는 이상했어요. 한국에서 자랐을 땐 여름이면 장마가 따라오는 법이었거든요.

장마철만 되면 하루 이틀도 아니고, 1~2주 동안 계속 비가 내리고, 우산이 필수품이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LA에선 여름에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죠. 그것도 그럴 게, 6월부터 8월까지 비가 한 방울도 안 오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여름엔 비가 안 오는 걸까요?

간단히 말하면, 기후대 자체가 다릅니다. LA가 포함된 캘리포니아 대부분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Mediterranean Climate)'에 속해요. 이 기후의 특징이 바로 여름엔 덥고 건조하고, 겨울엔 온화하면서 비가 오는 구조예요. 그러니까 캘리포니아의 비는 대부분 11월에서 3월 사이, 즉 겨울에 몰려 있고, 여름에는 고기압 영향으로 구름조차 거의 안 생깁니다.

기상학적으로 보면 여름철에 캘리포니아를 감싸는 북태평양 고기압(Pacific High)이 강하게 자리 잡게 되면서 습기가 유입되는 것을 막고, 비구름이 생길 틈조차 없게 만든다고 해요. 이 고기압 덕분에 하늘은 매일같이 맑고, '캘리포니아 드림'이라는 말처럼 햇살 좋은 날이 이어지죠.

만약 한국 같았으면 이건 큰일입니다. 한국처럼 쌀농사가 중심인 나라에 여름에 비가 안 온다? 이건 진짜 재앙이에요. 논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물인데, 여름 장마로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벼는 자라지 못하니까요. 실제로 한국 역사 속에도 가뭄으로 인한 흉작, 기근이 여러 차례 있었죠. 조선시대만 해도 장마가 안 오면 하늘을 향해 기우제를 지내고, 백성들은 물 한 모금 아끼면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쌀농사보다는 과일, 채소, 견과류, 포도, 아몬드, 아보카도 같은 밭작물 위주고, 이 작물들은 논처럼 물에 잠기지 않아도 자랄 수 있어요. 물론 농업이 물을 필요로 하는 건 매한가지지만, 이 지역은 천연 강수 대신 '농업용수 시스템'에 크게 의존합니다.

대표적인 게 중앙 밸리(Central Valley)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농업용수 프로젝트예요.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산에서 녹은 눈이나 겨울철 강수로 모은 물을 댐에 저장하고, 그 물을 운하, 파이프, 관개 시설 등을 통해 농장으로 보내줍니다. 말하자면, 자연이 주지 않는 여름비를 인간이 시스템으로 대신하고 있는 셈이죠.

물론 요즘은 가뭄 문제가 심각해서 캘리포니아도 물 부족에 늘 시달리긴 해요. 지난 몇 년 동안은 저수지 수위가 낮아지면서 뉴스에서도 '워터 크라이시스(Water Crisis)' 이야기가 자주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물 공급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까, 여름에 비가 거의 안 와도 농업은 그럭저럭 유지가 되는 거죠. 한국이었다면 이런 시스템 없이 여름비가 없다면 정말 속수무책일 거예요.

30년 가까이 LA에서 살면서 느낀 건, 이 지역은 날씨가 너무 일정해서 좋으면서도 가끔은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비 오는 날의 낭만, 여름철 소나기의 감성, 우산을 쓰고 비 오는 거리 걸어가는 풍경 같은 건 이곳에서는 정말 귀한 경험이에요.

그래도 또 생각해보면... 야외 일정은 비 걱정 없고, 여름여행도 취소될 일 없이 잘 가고.

이런 날씨가 참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특히 농사짓는 분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겠죠.

만약 캘리포니아에 한국처럼 여름 장마가 있었으면? 아마 LA 사람들은 조금더 우울해졌을지도 몰라요.

결국 자연이든 사람이든, 자기 환경에 맞춰 잘 적응하고 살아가는 게 정답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