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와서 엘에이에서 30년 넘게 살다보니 입맛이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한창 나이에는 부대찌게에 소주를 즐기던 나였는데 이젠 Trader Joe's에서 와인과 함께 훈제연어, 아보카도를 고르는 50대 남자가 되어버렸다.

이민 와서 20대 때는 이민와서 적응하느라 정신 없었고, 30대엔 와이프 만나서 아이들 키우느라 바빴다. 그리고 40대는 사업이 자리잡으며 여유가 약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내나이 54. 만으로는 53이지만... 어쨋든 나이로 치면 미국기준 중년의 한복판이다.

누가 “형님 요즘 사는 게 어때요?” 하고 물으면, 웃으며 대답은 한다. “나쁘지 않아. 근데 가끔... 잘 살고 있는건가 싶을 때가 있어.”

사실 이런 감정이 바로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난다.

심리학자들은 보통 이 시기를 40세에서 60세 사이로 본다.

남자에겐 3년에서 길면 10년, 여자에겐 2~5년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나름 길다. 장편 드라마로 치면 시즌 5까지는 가는 셈이다.

중년의 위기는 정체성의 흔들림이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해왔지? 앞으로는 뭘 해야 하지?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 시기엔 후회가 많아진다.

왜 그때 그 직장이나 사업을 포기했을까.. 왜 그 친구랑 멀어졌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하며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또 하나, 몸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피곤해도 한숨 푹 자면 회복되던 체력이 이제는 회복이 더디고 어쩔때는 주말 내내 누워있어야 겨우 살아난다.

주름 하나가 생길 때마다, 어깨가 한 번씩 결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여기서 재밌는 건, 남자와 여자가 중년의 위기를 겪는 방식이 다르다는 거다.

남자는 보통 ‘성과’에 흔들린다. 일에서 밀려나는 느낌, 젊은 후배의 업무성과가 나를 넘어섰는 좌절, 혹은 해고나 사업 부단에 떠는 불안.

여자는 ‘역할’에서 흔들린다. 엄마로, 아내로,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온 내 인생의 의미는 뭐였나.

아이가 다 커서 독립해버렸을 때 오는 허탈감 같은 것 말이다.

미국 문화에서 흔히 말하는 중년 위기의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갑자기 스포츠카를 사거나, 젊은 유행을 따라하는 50대 남성.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 클리셰지만, 그게 왜 나오는지는 이해가 간다. 젊음을 다시 움켜쥐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갈망.

누군가는 그걸 사랑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돈지랄이라 부르겠지만, 사실 그 밑에는 똑같은 외침이 숨어 있다.

“나 아직 안 끝났어.”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갑자기 몸키운다고 피트니스에 빠지고,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하고, 돌싱되고 50 넘어서 인스타 업뎃에 목숨거는 녀석.

중년의 위기는 삶에 대한 재평가의 시기다. 잘못 살아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텨온 나를 다시 바라보며, "이제 남은 인생은 더 잘 살아보자"는 몸부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를 ‘기회’라고 부르고 싶다.

네, 맞습니다. 탈모도 기회, 주름도 기회, 체력 저하도… 아 좀 억지같긴 하지만, 어쨌든 기회.

이럴 때일수록 몸을 잘 돌봐야 한다. 운동을 하고, 소식(小食)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가끔은 여행도 가보고.

중년의 위기가 오는가?

진짜... 살다보면... 온다고 본다.

하지만 방황하거나 너무 고심하다가 무너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고비를 넘어왔고, 아직 할 일도 많다.

그리고 요즘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중년 기준 나이대도 늘어나서 Midlife Crisis 는 On-going이 된걸지도 ....

결국 살면서 문제가 없는 나이대는 죽을때까지 없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