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오래된 미국 영화를 하나 보았습니다.
배경이 1940년대 로스앤젤레스였는데, 윌셔 길을 따라 서민들이 모여 경마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경마표를 들고 경주마를 찍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배당을 확인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수중의 돈을 몰빵할 말을 고르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습니다.
분명히 윌셔와 버몬트 근처로 보이는 배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영화적인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찾아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군요.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에서 길거리 경마 베팅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대략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 특히 1940년대가 절정기였다고 합니다.
그 배경에는 대공황이 있습니다. 1930년대 경제가 크게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작은 돈으로 인생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눈을 돌린 것이 경마였습니다. 1933년 캘리포니아가 경마 베팅을 합법화하면서 LA 주변에는 대형 경마장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산타 아니타 경마장입니다. 지금도 유명한 곳이죠.
문제는 사람들이 꼭 경마장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도시 안에서도 얼마든지 돈을 걸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사람들이 바로 북메이커(bookie)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 당구장, 식당 뒤쪽 방, 작은 사무실 같은 곳에서 경마 베팅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윌셔 길 풍경처럼, 평범한 서민들이 모여 "오늘 몇 번 말이 들어온다더라" "배당이 얼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실제로도 흔했다고 합니다. 당시 연구 자료를 보면 도시 곳곳에 북메이커 네트워크가 퍼져 있었고 조직범죄까지 개입하면서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고 합니다.
LA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30~40년대에는 북메이커 조직이 꽤 많았고, 일부는 영화배우나 부유층 고객까지 상대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당시 LA에는 "북메이커 왕(bookie king)"이라고 불린 인물도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바나 클럽 중 일부는 사실상 스크린경마 업소처럼 경마 베팅 장소로 알려져 있었고, 경찰 조사나 언론 기사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꽤 큰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조직범죄 개입입니다. 돈이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마피아나 범죄 조직이 북메이커 사업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둘째는 경찰 부패였습니다. 단속을 해야 할 경찰이 뇌물을 받고 눈을 감아 주는 사건이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셋째는 도시 도박 문화 확산입니다. 바와 술집, 당구장 같은 곳에서 베팅이 이루어지면서 서민들이 쉽게 도박에 빠질 수 있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race wire"라는 전화선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경마 결과가 전용 전화선을 통해 빠르게 전달되면 도시 안에서도 바로 베팅 결과를 정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실시간 스포츠 베팅 시스템과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이 때문에 194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에서는 아예 이 전화선을 끊는 단속 정책까지 시행되었습니다. 통신 회사에 압력을 넣어 북메이커들이 정보를 받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50년대 초에는 미국 상원에서 조직범죄 청문회(Kefauver hearings)까지 열렸습니다. 도시 곳곳에 퍼져 있던 불법 베팅 네트워크가 조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지금보다 오히려 도박 접근성이 더 높았다고 말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베팅을 하고 월급 일부를 경마에 쓰는 경우가 흔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신문에는 "도시 전체가 작은 경마장처럼 움직인다"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놀랐던 윌셔 길 장면도 완전히 허구는 아니었습니다. 바에서 경마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 북메이커에게 돈을 거는 사람들, 전화로 배당을 확인하는 장면들은 실제 도시 문화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스포츠 베팅이나 카지노 같은 다양한 도박이 있지만, 그 시절에는 도박의 중심이 거의 경마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마가 사회적으로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장면이 영화 속 이야기인데도 마치 오래된 거리의 풍경을 우연히 엿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윌셔 길에서 경마 이야기에 들떠 있던 그 사람들의 흥분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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