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인가 한국에서 김지연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찬바람이 불면'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당시에는 꽤 인기를 끌었던 노래인데,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가을에 찬바람이 불면 문득 생각나곤 합니다.
그런데 제가 살고 있는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는 이 노래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찬바람이 불면 누군가 떠난 게 아니라, 여름이 떠난 겁니다.
찬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줄아세요
스처가는 바람뒤로 그리움만 남긴체
낙엽이지면 내가 떠난줄아세요
떨어지는 낙엽위에 추억 만이 남아있겠죠
한때는 내 어린 마음 흔들어 주던
그대의 따뜻한 눈빛이
그렇게도 차가웁게 변해버린건
계절이 바뀌는 탓일까요
찬바람이불면 그대 그리워 지겠죠
그렇지만 이젠다시 나를 생각하지 말아요
한때는 내 어린 마음 흔들어 주던
그대의 따뜻한 눈빛이~
그렇게도 차가웁게 변해버린건
계절이바뀌는 탓일까요
찬바람이 불면 그대 외로워지겠죠
그렇지만 이젠다시 나를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지만 이젠다시 나를 생각하지 말아요
샌안토니오에 살아보면 10월 중순 가을날씨로 바뀔때 한국처럼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해지고, 나뭇잎이 물들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낮 기온이 화씨 80도, 섭씨 27도를 훌쩍 넘었습니다.
습도까지 높으니 10월 중순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반팔을 입고 나가도 덥고, 자동차 에어컨도 여전히 켜야 합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북쪽에서 찬바람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바람이 조금 부는가 싶다가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창밖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무들이 거칠게 흔들립니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깜짝 놀랍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덥고 습했던 공기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얼굴을 때립니다.
하룻밤 사이에 계절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텍사스에서 흔히 경험하는 콜드 프런트(Cold Front), 즉 한랭전선의 영향입니다.

샌안토니오는 멕시코만에서 올라오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캐나다와 미국 중부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가 텍사스까지 밀려옵니다.
특히 텍사스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를 막아줄 거대한 동서 방향의 산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강한 한랭전선이 내려오면 기온이 짧은 시간에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람의 방향입니다. 평소에는 남쪽이나 남동쪽에서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불다가 한랭전선이 통과하면 갑자기 북풍으로 바뀝니다. 습도도 떨어지고 공기 자체가 달라집니다.
텍사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Blue Norther'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북쪽에서 강한 찬바람이 갑자기 몰려오면서 기온이 뚝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물론 샌안토니오의 가을이 계속 추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찬바람이 지나간 뒤 며칠만 지나면 다시 화씨 80도 가까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두꺼운 옷을 꺼냈다가 다시 반팔을 입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10월에도 옷장을 완전히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날씨가 싫지만은 않습니다.
밤새 북풍이 불어대고 아침에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 드디어 길고 긴 텍사스의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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