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재판으로 19명 처형된 세일럼, 10월마다 붐비는 역설 - Boston - 1

지난 주말에 세일럼 가는 통근열차를 탔는데 출발 전부터 객차가 꽉 차 있었어요. 마녀 모자 쓴 대학생들, 망토 두른 커플, 호박 바구니 든 아이들까지요.

그런데 내리자마자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 축제의 출발점이 결국 사람이 죽은 사건이잖아요. 오늘은 그 역설에 대해 라떼 한 잔 놓고 조금 길게 써보려고 해요.

1692년, 지금의 댄버스인 세일럼 빌리지에서 몇몇 소녀들이 이상한 발작을 보이면서 모든 게 시작됐어요. 마녀의 짓이라는 고발이 꼬리를 물었고, 특별재판소가 꾸려졌죠. 몇 달 만에 수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혔어요.

그해 교수형을 당한 사람은 모두 19명이에요. 7월 19일에 5명, 8월 19일에 5명, 9월 22일에 8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6월에 먼저 처형된 브리짓 비숍까지 더하면 딱 19명이 되고요.

숫자만 보면 담담한데, 이름을 하나씩 읽으면 얘기가 달라져요. 레베카 너스는 동네에서 존경받던 70대 할머니였대요. 존 프록터는 재판의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따졌던 농부였고요.

교수형 말고 다른 방식으로 죽은 사람도 있어요. 자일스 코리는 재판 자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무거운 돌에 깔려 압사당했어요. 매사추세츠 역사에서 이런 방식의 처형은 이게 유일하다고 해요.

감옥에서 숨진 사람들까지 합치면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5명으로 집계돼요. 그중엔 어린아이도 있었다는 대목에서 한참 멈춰 있었어요. 마녀는 없었는데, 죽은 사람은 진짜였던 거죠.

그럼 이 어두운 도시가 어떻게 핼러윈의 성지가 됐을까요? 의외로 계기는 TV 시트콤이었어요. 1970년에 드라마 비위치드 제작진이 세일럼에 와서 촬영을 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해요.

1982년에는 지금의 헌티드 해프닝스 축제가 시작됐어요. 처음엔 소박한 행사였는데 점점 커져서 10월 한 달 내내 이어지는 축제가 됐죠. 올해도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열리고 있어요.

2005년엔 비위치드 주인공 사만다의 청동상이 시내 공원에 세워졌어요. 당시 주민 중에는 1692년 희생자들에게 무례하다고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대요. 사만다는 가상의 마녀지만, 죽은 사람들은 마녀가 아니었다는 말이 꽤 아프게 들렸어요.

올해는 특히 사람이 더 몰려요. 세일럼이 도시가 생긴 지 400주년을 맞았거든요. 시에서는 10월 한 달 방문객을 100만 명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와 MBTA가 직접 나서서 시내에 차 끌고 오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예요. 주말엔 열차를 늘리고, 보스턴 롱워프에서 출발하는 페리도 더 큰 배를 띄운대요.

사람 구경하다 지쳐서 골목 카페에 들어갔어요. 시나몬 뿌린 펌킨 라떼가 손에 닿는 순간 좀 살 것 같더라고요.

제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은 리버티 스트리트의 세일럼 마녀재판 추모공원이에요. 재판 300주년이던 1992년에 문을 열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이 헌정식에 참석했대요.

돌담을 따라 희생자 이름과 처형 날짜가 새겨진 돌 벤치가 놓여 있어요. 바로 옆 골목은 사탕 봉지 든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한데, 이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어요. 누군가 벤치 위에 꽃 한 송이를 두고 갔더라고요.

조금 더 걸어가면 프록터스 레지라는 곳이 있어요. 오랫동안 처형 장소가 갤로스 힐 꼭대기라고 알려졌는데, 연구팀이 문서와 지질 조사를 맞춰보고 2016년 1월에 실제 장소를 이곳으로 확인했어요. 생각보다 훨씬 최근 일이라 놀랐어요.

2017년 7월 19일, 첫 집단 처형 325주년에 이곳에 추모비가 세워졌어요. 반원형 화강암 벽에 19개의 돌이 박혀 있고, 돌마다 이름과 날짜가 새겨져 있어요.

해 질 무렵에 거기 서 있는데 하늘이 주황빛에서 보랏빛으로 천천히 바뀌었어요. 같은 시간, 몇 블록 밖에선 좀비 분장을 한 사람들이 셀카를 찍고 있었고요. 그 대비가 이 도시를 제일 잘 설명하는 장면 같았어요.

명예 회복은 더 늦었어요. 매사추세츠주는 1957년에 결의안으로 일부 피고인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바로잡았어요. 그런데 엘리자베스 존슨 주니어라는 여성은 어찌 된 일인지 그 명단에서 빠져 있었어요.

그녀의 이름이 마침내 정리된 건 2022년 7월이에요. 계기는 한 중학교 8학년 시민교육 수업 학생들의 청원 운동이었대요. 329년이 걸린 일을 중학생들이 움직였다는 게 저는 좀 뭉클했어요.

그럼 이 축제는 비극을 가볍게 소비하는 걸까요? 솔직히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마녀 굿즈 가게 앞에 늘어선 줄을 보면 지금도 살짝 불편하고요.

그런데 하루를 걸어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추모공원에도 발길이 닿고, 희생자 이름이 해마다 다시 불려요. 조용히 묻혔으면 아무도 몰랐을 이름들이죠.

결국 중요한 건 어떻게 즐기느냐 같아요. 저는 이 사건이 소문과 공포가 법의 얼굴을 하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쉽게 낙인찍는 분위기는 지금도 언제든 생길 수 있으니까요.

혹시 이번 달에 가실 분들께 몇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차는 두고 열차나 페리를 타세요. 10월 초 평일이 그나마 덜 붐비고, 마지막 주와 핼러윈 당일은 정말 각오하셔야 해요.

코스는 사진 찍는 곳 한두 군데 들렀다가 추모공원과 프록터스 레지에서 잠깐 멈추는 걸 추천해요. 아이와 함께라면 거기서 왜 이런 축제가 생겼는지 한 번쯤 얘기해보셔도 좋겠어요. 저라면 그 대화가 그날의 진짜 기념품일 것 같아요.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식은 라떼를 마저 마셨어요. 창밖 노을은 이미 다 지고 바다 쪽 하늘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어요.

마녀 모자도 좋고 호박 바구니도 좋아요. 다만 그 화려함 뒤에 이름 19개가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 챙겨서 다녀오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