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 남부의 해안 도시 롱비치(Long Beach)는 이름처럼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예요.
원래 이 지역은 네이티브 아메리칸인 통바(Tongva)족이 살던 땅으로, 그들은 이곳을 '이스트웨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1800년대 초 스페인과 멕시코의 통치 아래 목축지로 사용되다가, 19세기 후반 들어 본격적인 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롱비치의 역사가 열립니다.
1880년대 철도가 개통되면서 롱비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해변 휴양지로 급성장했어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도시 느낌이 아니라, 오렌지 농장과 소규모 마을이 섞인 조용한 해안 도시였죠. 1897년에는 공식적으로 'Long Beach'라는 이름으로 시가 등록되었고, 그 무렵부터 부유한 LA 시민들이 여름 별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롱비치의 상징 중 하나인 '파이크(The Pike)'가 문을 열었는데, 당시에는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 해변 유원지가 있던 명소로, 1900년대 초 LA 사람들의 휴양 명소로 인기가 높았죠.
그러다 1920년대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도시의 운명이 크게 바뀝니다. 롱비치 해안과 인근 지역에 원유 시추탑이 세워지면서, 한때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석유 도시로 성장했어요. 부동산과 산업이 동시에 성장했고, 항만 건설까지 이어지면서 경제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1930년대에는 이미 미국 서부 최대 항만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미 해군 기지가 세워지며 군수 산업 중심지로 발전했죠.
하지만 1933년 큰 지진이 도시를 덮치면서 많은 건물이 무너졌고, 학교와 교회, 상점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비치는 재건 속도가 빨랐어요. 오히려 지진 복구 과정에서 근대식 건축물과 새로운 도로망이 만들어지면서 도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0~60년대에는 롱비치 항구와 함께 항공산업이 성장하면서 도시가 한층 더 활기를 띠게 됩니다. 이때 보잉(Boeing)과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 같은 항공 제조 회사들이 공장을 세웠고, 수많은 기술자와 근로자들이 이주해 왔어요. 이 흐름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고, 롱비치는 산업 도시이자 항만 도시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산업 중심에서 문화와 관광 중심으로 변신을 시도했어요. 그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퀸메리(Queen Mary) 호예요. 한때 대서양을 오가던 영국의 초호화 여객선을 롱비치 항구에 영구 정박시켜 호텔과 관광 명소로 활용하면서, 도시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얻게 됩니다.
이와 함께 롱비치 아쿠아리움(Aquarium of the Pacific), 컨벤션센터, 워터프런트 쇼핑가 등이 조성되며 '항구도시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았죠.
오늘날의 롱비치는 단순한 해변 도시가 아니라, LA 대도시권을 잇는 중요한 경제·문화 허브입니다. 항만 물류, 관광, 대학(캘리포니아 주립대 롱비치)까지 다양한 산업이 공존하고 있고, 다문화 커뮤니티가 모여 사는 글로벌 도시로 성장했어요. 예전에는 석유와 조선소의 도시였다면, 지금은 예술, 해양, 그리고 혁신이 어우러진 활기찬 해안도시로 변신한 셈이죠.
롱비치에는 캘리포니아의 산업과 문화가 함께 자라온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짱구는목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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