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만 해도 인디애나 주는 지금처럼 "중서부"라고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 눈에는 이곳이 완전한 "서부(Frontier)"로 여겨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부라고 하면 캘리포니아나 콜로라도 같은 지역을 떠올리지만, 당시에는 오하이오 강만 넘어도 이미 미지의 개척지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뉴잉글랜드 사람들은 인디애나, 오하이오, 일리노이 같은 곳을 통틀어 "서부 프론티어"라고 불렀으며, '서부로 간다'는 말은 곧 '인디애나로 떠난다'는 뜻이었습니다. 1800년대 초 인디애나는 여전히 원주민들이 많이 살던 땅이었습니다.

미시시피 강 동쪽에서는 가장 늦게 개척이 진행된 지역 중 하나였고, 당시 이 땅에는 쇼니(Shawnee), 마이아미(Miami), 델라웨어(Delaware) 같은 부족들이 강을 따라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슴, 들소, 칠면조를 사냥하고, 옥수수·콩·호박을 재배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그들의 삶은 유럽계 이주민의 확장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온 이주민들은 대부분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버몬트 등 뉴잉글랜드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족 단위로 마차에 짐을 싣고, 오랜 여정을 거쳐 인디애나의 숲과 강을 따라 정착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교회 문화와 교육 제도, 마을 구조를 그대로 옮겨와 인디애나 초창기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인디애나의 오래된 교회나 학교, 마을 이름에는 뉴잉글랜드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주민의 확산은 원주민과의 충돌을 불러왔습니다. 개척민들은 사냥터와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원주민의 영역을 침범했고,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1811년 '티펙카누 전투(Battle of Tippecanoe)'는 인디애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미국군과 쇼니족 추장 테쿰세(Te-cum-seh)의 형 텐스크와타와(Tenskwatawa)가 이끄는 원주민 연합군이 충돌했는데, 이 전투는 결국 미국군의 승리로 끝나며 인디애나 지역에서 원주민 세력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후 인디애나는 급속도로 유럽계 개척민들이 점령하게 되었고, 농업과 목축 중심의 정착촌이 늘어났습니다. 초기 정착민들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통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았고, 먹을거리는 직접 사냥하거나 재배해야 했습니다. 사슴, 토끼, 칠면조 고기와 함께 옥수수빵, 감자, 사과잼, 메이플시럽 같은 단순한 음식이 주식이었습니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겨울에는 훈제나 염장 방식으로 식량을 보관했고, 가족 모두가 농사와 사냥에 참여했습니다. 인디애나는 1816년 미국의 19번째 주로 공식 편입되었으며,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수자원 덕분에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노스웨스트 테리토리(Northwest Territory, 북서 준주)'의 일부로 포함되었던 인디애나는 미국이 체계적으로 서부 확장을 시작하던 상징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인디애나는 오늘날 중서부의 중심에 있지만, 19세기 초에는 분명히 '서부의 시작점'이자 개척시대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원주민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이어진 충돌과 공존의 흔적이 지금의 인디애나 문화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