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는 원주민 부족인 체로키족과 세미놀족이 거주하던 땅이었지만, 영국의 버지니아 개척 이후 백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점차 변화했습니다. 1820년대부터 백인 개척자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1835년에는 미군이 세미놀족과 체로키족을 제압하면서 원주민들은 강제 이주당하고, 백인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목화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애틀랜타는 목화를 재배하고 수확한 목화를 이송하기 위한 철도가 발달하여 상업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영국인 노예상인을 통해 서아프리카 흑인들이 목화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애틀랜타는 그 당시 노예제도가 중심이 된 사회였습니다.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애틀랜타와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 남부 지역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특히 타라 농장이 등장하며, 이 농장은 애틀랜타에서 멀지 않은 존스버러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1861년 남북 전쟁이 발발하면서 애틀랜타는 남부군의 주요 거점이 되었고, 결국 윌리엄 테쿰세 셔먼 장군의 초토화 전략에 의해 도시의 대부분이 불타버리게 됩니다. 셔먼 장군은 남부 인프라를 파괴하여 남부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고, 결국 남부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 후 재건이 시작되었으며, 애틀랜타는 1868년에 조지아주 주도로 지정되었습니다.

산업 발전과 재건 산업 발전은 2차 세계대전 동안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마리에타에 비행기 조립 공장이 세워지면서 애틀랜타 지역의 산업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1960년대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인종차별 철폐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며, 애틀랜타는 그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킹 목사의 영향력은 크며, 그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흑인 권익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그 결과 1973년, 애틀랜타는 미국의 주요 도시 중 최초로 흑인 시장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메이너드 잭슨이 그 시장으로 선출되어, 흑인 시장이 도시를 이끄는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도시 발전과 현대화 1990년대에 들어 애틀랜타는 1996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도시 미관을 개선하고 게토 밀어버리기와 같은 도시 재개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운타운은 안전해졌지만 여전히 빈민가는 존재하며, 교외 지역의 급속한 팽창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애틀랜타의 메트로 애틀랜타는 미국에서 9번째로 큰 도시로, 550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 크기는 직경 100km에 달하며, 교외 지역은 매우 넓게 확장되어 있습니다.

애틀랜타는 그 긴 역사 속에서 여러 번의 변화를 겪으며 산업화와 사회적 발전을 이루었고, 현재는 미국 남부의 중요한 도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