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하늘이 유독 또렷하다. 미국 남동부의 맑은 밤, 별빛은 다소 희미하지만 달빛은 꽤 또렷하게 내려앉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달을 보면, 이상하게도 초승달만큼은 나를 자꾸 과거로 데려간다. 반달도 보름달도 아닌, 바로 그 가느다란 초승달 말이다.
초승달을 보면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해진다.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 같지만, 나에겐 그 달이 군대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작은 창이다. 한국에서 복무하던 시절, 초병 근무를 서며 외롭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 근무는 말 그대로 '고요 속의 고독'이었다. 초소에 혼자 서 있으면, 모든 소리가 묻혀버린 어둠 속에서 오로지 달빛만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때마다 초승달을 보며 늘 같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이 달을 나이 들어서 보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질문은 늘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그저 그 달이 계속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잘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고,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초승달을 낯선 땅 미국에서 다시 본다. 이민을 결심했던 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쉰이 가까워진 지금, 나는 대학교 1학년 딸아이의 아버지고, 수입은 늘 기대에 못 미친다. 매일 아침 와이프와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이번 달은 어떻게 넘기나" 하는 돈 걱정이 빠지지 않는다.
딸아이가 등록금을 걱정하지 않도록 하려 애쓰고, 와이프가 무언가 사고 싶다는 말조차 미안해하지 않게 하려 안간힘을 쓴다. 가끔은 '내가 왜 여기까지 왔나' 싶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면 좀 더 똑똑하고 냉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허무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게 내 삶이다.
내가 초승달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 그 자체로도 어쩌면 큰 행운인지 모른다. 한국의 외딴 산 속 초소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막연히 떠올렸던 그 '미래의 나'는 지금 살아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딸아이가 대학에 다니는 걸 지켜보며, 때론 한숨 섞인 웃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나는 언젠가, 65세가 되어 노인이 된 내가 또다시 초승달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도 잘 살아왔어. 버티면서, 사랑하면서, 큰일 없이 여기까지 왔네."
그때가 오면, 지금 이 밤하늘도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이 되겠지. 달은 또 차고 기울 것이다. 내 삶도 그러하리라. 가늘지만 따뜻하게, 느리지만 성실하게.
오늘도 다시 초승달을 바라본다. 쓸쓸하지만, 그 안에 위안이 있다.
그리고 작은 다짐 하나를 마음에 새긴다.
"조금은 힘들어도, 나 여기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