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있다 보면 환자들이 종종 본인의 아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 애가요.. 어려운 직소 퍼즐을 혼자서 척척 푸는데 혹시 천재일까요?”

“우리딸이 영어 단어를 어찌나 빨리 배우는지 6살인데 어휘력이 어마어마해요.”

그러면 저는 살짝 웃으며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아이가 퍼즐 좀 잘 한다고 아인슈타인은 아닙니다.”

보통 똑똑하다는 IQ 135 이상이면 웩슬러 기준으로 상위 1%에 속합니다. 세계 인구 80억 명을 기준으로 하면 약 8,000만 명이죠.

이쯤 되면 ‘소수’라기보다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평균보다 훨씬 높은 지능은 맞지만, 그걸 그냥 “우와 똑똑하다!” 한 마디로 뭉개버리는 건 좀 억울하지 않겠어요?

고지능자라 하면 영화 속에서 순식간에 수수께끼를 풀거나, 라틴어, 스페인어, 러시아어까지 줄줄 구사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은 그런 장면 대부분이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일 뿐 입니다.

심지어 수학계의 슈퍼스타, 테렌스 타오조차도 “나도 피곤할 땐 아무것도 안 된다”고 털어놓은 적 있습니다.

수학을 빠르게 습득하긴 해도, 학부생보다 2.5배 빠른 속도일 뿐. 그리고... 그사람도 한자는 잘 모릅니다. 안 배웠으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고지능자도 인간입니다.

뇌는 근육과 같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두뇌도 무한정 쓸 수는 없죠.

1시간 내내 처음과 똑같은 집중을 유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100m를 전력질주하는 우사인 볼트조차 그 속도로 10km를 달리진 못하잖아요.

고지능자라 해도 피로하고, 실수하고, 멍 때리고, 카페인 없으면 괴로워합니다.

게다가 이들도 뇌의 구조나 신경 전달 메커니즘은 우리와 같습니다. 스트레스 받으면 뇌 기능 저하됩니다. 인지 편향에 휘둘립니다.

심지어 멘사 회원 중에서도 정치적 음모론에 빠지거나 황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도된 적 있습니다.

IQ 135 넘는다고 항상 현실 판단이 옳은 건 아닙니다.

지능이라는 것도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흔히 문해력, 기억력, 추론력 이 세 가지로 나누는데, 요즘 돌아다니는 IQ 테스트는 이 셋을 다 반영하지 못합니다.

특히 대중적인 테스트는 대부분 도형 추론 위주인 ‘레이븐스 매트릭스’ 유형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걸로 점수가 잘 나왔다고 “나 멘사감?” 하기엔 좀 이릅니다.

예전에 한 멘사 회원이 말했죠.

“문제의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고 → 결과를 빠르게 추론하고 →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IQ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절대적인 우월함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지, 항상 더 잘하는 건 아니니까요.

전문지식의 깊이는 단순 지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고지능자 교수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 사람이 하루 만에 목수가 나무를 보는 눈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혹은 간호사의 오랜 임상 감각을, 영업사원의 사람 보는 촉을?

절대 안 됩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배우지 않은 분야에선 평범한 사람보다 당연히 부족합니다.

심지어 테렌스 타오조차, 자기 분야인 수학에서도 동료가 연구한 최전선의 내용을 다 이해하려면 공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즉, 뇌 회로는 누구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단 말이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을 겁니다.

말을 참 논리적으로 잘하고, 뭘 해도 빠르게 이해하는 친구.

혹은 어릴 적부터 무슨 시험만 보면 성적 상위권인 사람.

맞습니다. 그들은 분명 고지능자일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든 분야에서 무조건 잘하는 것처럼 착각하진 마세요.

우리 모두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고, 각자의 성향이 있는 겁니다.

저는 내과 의사지만, 간호사보다 수액 꽂는 건 느리고, 영양사보다 식단을 잘 챙길수 없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진짜 지적 겸손과 성장을 시작할 수 있어요.

IQ?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결국, 인생은 EQ, SQ, 그리고 하루하루 쌓이는 경험과 관계에서 결정되니까요.

그나저나 100명중 2명꼴로 IQ 135 이상이라니… 우리 병원에도 꽤 있겠네요.

그런데 오늘도 커피 한 잔 없이 진료하다 보니…

IQ고 뭐고 그냥 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