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구입했을 당시 이 일대에는 세미놀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미군과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며 결국 전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제2차 세미놀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미군은 세미놀족의 공격에 대비해 이 지역에 '포트 하비(Fort Harvie)'라는 요새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요새는 버려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세미놀족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은 폐허가 된 포트 하비를 재건해 새 요새를 세웠습니다. 그 요새가 바로 오늘날의 도시 이름이 된 '포트 마이어스(Fort Myers)'입니다.

제3차 세미놀 전쟁이 끝난 뒤 요새는 또다시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곧 남북전쟁이 시작되면서 포트 마이어스의 운명은 다시 바뀌었습니다. 1863년 여름, 빅스버그 전투에서 남부연합이 패배하면서 미시시피강의 통제권을 북부군에게 빼앗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남부 지역의 소고기 공급이 끊어졌습니다. 남부는 대체 공급지를 찾기 위해 플로리다 남서부 지역, 특히 포트 마이어스 일대에 수천 마리의 소를 방목했습니다. 1863년 말까지는 매주 1,000마리에서 2,000마리의 소가 플로리다에서 남부 지역으로 수송되었으나, 북부군이 해안 봉쇄를 강화하면서 그마저도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자 포트 마이어스는 또 한 번 버려진 요새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1866년 2월 21일, 마누엘 곤잘레스 대위가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는 세미놀 전쟁과 남북전쟁 기간 동안 이 지역의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요새에서 군 보급품과 우편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오랜 기간을 보냈습니다. 전쟁 후 그는 이곳에 교역소를 열었고, 이를 계기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서서히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19세기 후반에는 필라델피아 출신의 부유한 사업가 해밀턴 디스턴이 이 지역 개발에 나섭니다. 그는 증기선이 더 쉽게 다닐 수 있도록 에버글레이즈 강을 준설하고 배수로를 정비했습니다. 그 덕분에 포트 마이어스는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은 이주민과 투자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1885년에는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플로리다 서해안을 항해하다가 포트 마이어스에 들르게 되었는데, 이곳의 자연과 기후에 매료되어 13에이커의 땅을 구입했습니다. 그는 이곳에 겨울용 별장을 짓고 부인 미나와 함께 매년 겨울을 보내며 휴양과 연구를 병행했습니다. 이때부터 포트 마이어스는 '겨울의 도시'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904년 5월 10일, 대서양 해안선 철도가 포트 마이어스까지 연결되자 도시의 발전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습니다. 철도의 개통은 관광객과 이주민, 그리고 사업가들을 한꺼번에 불러들였고, 도시 곳곳에는 상점과 숙박시설이 생겨나 활기를 띠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에디슨은 미국이 고무 수입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해,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 헨리 포드와 협력하여 포트 마이어스에 식물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고무 대체 식물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훗날 플로리다의 산업 기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지금은 플로리다 남서부를 대표하는 도시로서, 따뜻한 기후와 역사적인 흔적 그리고 에디슨의 유산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