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트에서 고기를 사는데 라벨에 1.37 lb라고 찍혀 있었어요. 머릿속으로 0.45를 곱하다가 그냥 포기했습니다. 미국 생활이 꽤 됐는데도 이 계산은 여전히 손에 안 붙네요.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전 세계가 미터법을 쓰는데 미국은 왜 아직도 파운드랑 마일을 붙들고 있을까요? 찾아보니 "고집이 세서"라는 한마디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야기더라고요.
일단 반전부터 하나 드릴게요. 미국에서 미터법은 불법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1866년에 의회가 계약이나 거래에서 미터법을 써도 된다고 법으로 허용했거든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93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랑스 식물학자 조제프 동베가 1미터 막대와 1킬로그램짜리 구리 원통을 들고 당시 국무장관 토머스 제퍼슨에게 가려고 배를 탔어요.
그런데 그 배가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1794년 제퍼슨이 받은 편지에는 동베가 영국 사략선에 붙잡혀 숨졌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고 해요.
여기서 "해적 때문에 미국이 미터법을 놓쳤다"는 썰이 유명해졌죠. 솔직히 너무 재밌는 이야기라 저도 믿고 싶었는데, 스놉스 같은 팩트체크 사이트는 이걸 과장된 상식 정도로 봅니다. 해적 한 번에 나라의 단위가 정해졌다고 보긴 어렵다는 거죠.
더 재밌는 사실은 따로 있어요. 1893년 멘덴홀 명령 이후로 미국의 야드와 파운드는 공식적으로 미터와 킬로그램을 기준으로 정의됩니다.
1959년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이 1야드를 정확히 0.9144미터로 맞췄어요. 그러니까 미국의 자는 사실 미터법 위에 서 있는 셈이에요. 겉은 인치인데 속은 미터인, 일종의 반반 치킨이랄까요.
본격적인 전환 시도는 1975년이었습니다. 포드 대통령이 미터법 전환법(Metric Conversion Act)에 서명했고, 미터법 위원회(Metric Board)도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핵심 단어는 바로 voluntary, 자발적이라는 겁니다. 시한도 없고 강제 권한도 없었어요. "바꾸면 좋겠어요" 정도의 권유였던 거죠.
당연히 사람들은 안 바꿨습니다. 회사 입장에선 공구, 설계도, 생산라인을 다 갈아엎어야 하는데 누가 먼저 돈을 쓰겠어요.
1982년에는 레이건 행정부가 이 위원회를 폐지했어요. 이유는 연방 예산 감축이었고, 남은 업무는 상무부로 넘어갔습니다. 미터법이 싫어서라기보다 돈 문제였다는 게 당시 설명이에요.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에요. 1988년 무역법은 미터법을 무역과 상거래의 우선 단위로 다시 못 박았습니다.
연방 기관들은 1992 회계연도 말까지 조달과 보조금 업무에 미터법을 쓰도록 했어요. 물론 "경제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라는 단서가 붙었고요.
1992년에는 포장 라벨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포장 제품에 미터 단위와 인치-파운드 단위를 같이 적게 됐어요. 우리가 보는 "12 FL OZ (355 mL)" 같은 표기가 바로 그 결과예요.
그럼 미국은 미터법을 아예 모르는 나라일까요? 전혀요, 병원에서 약 용량은 밀리그램이고, 과학 실험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터법입니다. 2리터 콜라병도 매일 보잖아요.
애리조나의 일부 도로 표지판은 아직도 킬로미터로 거리를 적어 둔 곳이 있다고 해요. 운전하다 보면 잠깐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 들 것 같네요.
물론 두 단위를 섞어 쓰다 생긴 사고도 있어요. 가장 유명한 게 1999년 나사의 화성 기후 궤도선입니다.
한 팀은 추진력 데이터를 파운드-포스 초로 넘겼고, 항법 소프트웨어는 뉴턴 초를 기대하고 있었대요. 그 결과 1억 2,500만 달러짜리 탐사선이 화성에서 사라졌습니다. 단위 하나가 이렇게 비쌀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도 저는 이게 곧 "강제로라도 바꿨어야 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봐요. 실제 사고는 단위를 섞은 데서 났지, 인치를 쓴 것 자체 때문은 아니었으니까요.
정리해 보면 진짜 이유는 이겁니다. 법은 늘 권유에 그쳤고, 바꾸는 비용은 크고, 바꿔서 당장 얻는 이익은 작았어요. 그러니 각자 필요한 곳에서만 미터법을 쓰게 된 거죠.
저는 이 방식이 꽤 미국답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위에서 "내일부터 킬로그램!" 하고 밀어붙이는 대신, 필요한 업계가 알아서 바꾸게 둔 거니까요.
자동차, 의약품, 수출 산업처럼 세계와 맞물린 곳은 이미 미터법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시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곳에선 결국 바뀌더라고요.
반대로 동네 목수가 2x4 각목을 미터로 다시 부를 이유는 없잖아요. 저는 이쪽이 억지 개혁보다 훨씬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민자 입장에서 불편한 건 인정할게요. 오븐 온도 화씨 350도를 섭씨로 바꾸는 계산은 아직도 폰 계산기를 꺼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제 생존 팁은 간단해요. 1파운드는 대충 반 킬로보다 조금 적다, 1마일은 1.6킬로, 화씨 70도면 반팔 날씨. 이 세 개만 외워도 생활은 됩니다.
결국 미국은 미터법을 거부한 나라라기보다, 두 단위를 동시에 굴리는 나라에 가깝습니다. 좀 번거롭긴 해도 그게 이 나라가 굴러가는 방식이에요.
오늘도 마트에서 lb 라벨을 보면 한숨 대신 웃어 보려고요. 저 숫자 뒤에 제퍼슨과 해적과 화성 탐사선까지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고기 한 팩도 꽤 역사적인 물건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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