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il of Tears이라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들은 뭔가 비극적인 시의 내용인가 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 이름은 19세기 초반 체로키 부족같은 미국 원주민 부족 사람들을 강제로 쫓아낸 폭력의 길이었어요.
'눈물의 길'로 알려진 체로키 강제 이주는 1830년에 제정된 인디언 이주법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실제 대규모 이동은 1838년부터 1839년 사이에 일어났어요.
그당시 1년 정도 조지아와 주변 남동부 지역에 살던 체로키 부족을 오클라호마까지 몇 달 동안 걸어 가게 한 사건인데 미국 정부가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았죠.
당시 미국은 금이 발견됐다느니, 백인이 더 잘 개발할 거라느니 하면서 토지를 뺏었고 체로키 사람들을 마치 짐짝처럼 다뤘어요. 말만 '이주'지 사실상 추방이었고, "여기서 살고 싶으면 안 된다"라고 통보한 거나 다름없었죠.
그 길을 가는 동안 수천 명이 얼어 죽고 배고파 죽고 병들어 죽었어요. 그런데도 이걸 두고 '눈물의 길'이라는 말로 흘려듣기만 하면 마치 운명처럼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처럼 들려서 좀 불편해요.
정부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법이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내세워 만든 길인데, 그 결과를 슬픔에만 묶어두면 누구 책임인지 흐려지거든요.
체로키 사람들은 스스로 떠난 게 아니었고, 새로운 삶을 찾아간 게 아니었고,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도 아니었어요. 그냥 살아온 땅에서 쫓겨난 거예요. 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누군가는 부모를 묻고 바로 걸음을 재촉해야 했고, 누군가는 아이가 얼어 죽는 걸 보면서도 멈출 수 없었대요.

당시 백인들의 반응을 보면 기록이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조지아 땅에서 금이 나왔다며 체로키 땅을 탐냈던 사람들은 "우리가 더 잘 이용할 수 있다"면서 강제 이주를 지지했어요.
원주민 거주지역에 새로 집과 농장을 짓고 살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고요. 또 일부 정치인과 신문은 법적 절차를 거쳤다며 정당화했죠.
하지만 모든 백인이 같은 시선은 아니었어요. 선교사나 몇몇 시민들은 체로키를 도와주려 했고 이주 정책을 비난했어요. 다만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고 결국 힘 있는 쪽의 이익이 역사를 밀어붙였다고 봐야 해요.
지금 미국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차분하고 조용해요. 교과서에서는 심각한 역사라고 말하면서도 지나치게 담백하게 설명하고, 마치 "그런 일도 있었답니다" 하고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저 기념비 하나 세워놓고 문자 몇 줄 적어놓고, 잊지 말자고 말하면서, 사실 사람들은 대부분 별 감정 없이 쓱 읽고 지나가죠.
그게 더 씁쓸해요. 강제로 내쫓긴 사람들의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극이라는 감성만 남고, 현실적인 책임과 분노는 희미해졌다는 게.
그래서 '눈물의 길'이라는 말에 괜히 어색함이 남아요. 누가 울게 만든 눈물인지, 왜 그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그 질문까지 같이 적어놓기 전까지는 이 이름이 너무 예쁘게만 들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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