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서디나에 산다는 건 한때 '자연과 도시의 조화'를 누린다는 말이었지만, 요즘엔 좀 다르게 들려요. 아트센터 디자인 칼리지 근처를 가보면 아직 나무가 많고 공기도 좋긴 한데, 솔직히 예전만큼 '숨 쉴 여유'가 느껴지진 않아요. 언덕 위 캠퍼스를 중심으로 숲이 펼쳐져 있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절반은 주차장이고 절반은 공사 중이에요. 학생들이 카페보다 공원을 찾는다고 하지만, 그건 카페 자리가 비싸서 그렇다는 말도 있죠.

패서디나는 오랫동안 '정원 도시'라는 타이틀을 자랑해왔어요. 건물 사이로 나무가 보이고, 오래된 벤치 하나에도 햇살이 예쁘게 내려앉는 도시. 하지만 요즘엔 그 정원이 관리비에 눌려 시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아트센터 근처의 아링턴 가든도 예전엔 진짜 조용하고 감성적인 공간이었는데, 요즘은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려요. 정원보단 인스타그램 배경으로 소비되는 공간이 됐다고 해야 할까요. 시민들이 직접 가꿔온 그 정성이 상업화의 바람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어요.

로즈볼 경기장 옆 브룩사이드 파크도 예전엔 나무 그늘 아래 책 읽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여유로운 공기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는데 요즘엔 사정이 다릅니다. 주말엔 피크닉 인파에 쓰레기가 쌓이고, 평일엔 노숙자들이 늘어나면서 예전의 '조용한 공원' 분위기가 사라졌어요. '도심 속의 여유'라기보단, 도시가 버티고 있는 마지막 녹지 같아요.

디스칸소 가든은 여전히 아름답긴 해요. 참나무 숲길, 연못, 꽃길이 여전하긴 한데, 문제는 입장료예요. 주차비까지 합치면 짧은 산책 한 번에 꽤 큰돈이 나가요. 게다가 사람이 많아져서 '고요함'을 기대하기도 힘들죠.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을 그리던 학생들도 요즘엔 카메라 삼각대를 세운 관광객 틈에 끼어야 해요.

물론 여전히 패서디나의 녹지는 도시의 숨통 같은 존재예요. 다만 예전처럼 '자연과 함께 사는 여유'보다는, 이제는 '관리된 자연을 빌려 쓰는 현실'에 가깝죠. 나무가 많다고 해도 그늘 아래 앉을 벤치는 부족하고, 주말마다 붐비는 인파에 조용한 산책은 사치가 됐어요. 패서디나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도시는 벽보다 나무가 많다"고 말하지만, 요즘은 그 나무들 사이로 콘크리트 그림자가 함께 비치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로스앤젤스의 빽빽한 도심보다는 낫다는 위안으로 사는 거죠. 아트센터 근처에 산다는 건, 자연과 예술이 공존한다는 낭만보다 '주차장 근처에서 산책로를 찾아야 하는 현실'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도 가끔, 해 질 무렵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주황빛을 보면 '그래, 아직은 패서디나다' 싶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