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먹고 이삿짐 나르며 깨달았다, 노후에 돈이 없다는게 무엇인지  - Chicago - 1

나는 시카고에서 꽤 오래 살았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뉴욕에서도 살았었고 엘에이 가까운 오렌지 카운티에서도 살아본 적이 있다.

직업상 계약직으로 1년정도 살다 다른지역으로 이사가면 되다 보니까 계속 혼자 사는 게 편했다.

부모님 빼고 (장가안간다고) 눈치 볼 일도 없고 내가 번 돈 내가 쓰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집을 사야 한다거나 노후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아파트 리스가 끝나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사업체 견적을 받았는데 사람 부르고 트럭 쓰는 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아끼겠다고 U-Haul을 빌렸다. 그런데 짐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하면서 내가 정말 늙었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번쩍 들었던 박스인데 무겁다. 하나 들고 계단을 내려가면 허리가 뻐근하고 숨부터 고른다.

매트리스는 혼자 들 수도 없고 끌고 가기도 힘들다. 소파 하나 문밖으로 빼는 데 진이 다 빠졌다.

속으로 계속 한탄했다. "내가 환갑 넘긴 나이에 이걸 왜 직접 하고 있나."

그런데 답은 나도 안다. 돈 때문이다.

내가 수중에 돈이 충분했으면 사람을 불렀을 것이다.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포장부터 운반까지 $1,400 내고 전부 맡겼을 것이다.

나는 지갑하고 휴대폰만 챙겨서 차 몰고 새 아파트로 가면 된다.

젊었을 때 부터 여유자금을 만들어놓지 못했으니 갈수록 물가가 올라서 여유가 없는 지금 내 몸으로 대신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참 서글펐다.

날씨라도 좋으면 모르겠다.

그런데 세입자 생활하면서 이사 날짜를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나.

리스 끝나는 날짜가 있고 새 아파트 입주 날짜가 있다.

한겨울 칼바람 부는 날에 걸리면 그날 해야 하고, 한여름 덥고 습한 날에 걸리면 땀을 흘리면서 해야 한다.

내 집이면 이사걱정 없이 살면되는데 세입자는 계약서 날짜에 맞춰 움직인다.

더 서글픈 건 나에게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니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이삿짐 좀 날라달라고 하기도 그렇다.

친구들도 환갑이 넘었다. 나도 허리가 아픈데 친구라고 허리가 멀쩡하겠나.

40대 초까지는 그래도 친구 불러 술 한번 사주면 끝났던 일이 이제는 부탁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러고 보니 나이 들면 결국 돈이 사람 역할을 한다.

돈이 있으면 청소하는 사람을 부를 수 있고, 무거운 물건은 배달시킬 수 있고, 자동차가 고장 나면 새차를 사면 된다.

이렇게 이사할 때도 사람을 부르면 된다.

그런데 돈이 없으면 내가 해야 한다.

노후 자산이라는 게 결국 이런 것이었다.

은행 잔고에 숫자가 많으면 좋은 차를 사고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노후 자산은 늙은 내 몸이 해야 할 노동을 대신해주는 돈이었다.

30대에는 돈을 아끼려고 직접 하는 게 자랑스러웠다.

"이걸 사람 불러서 왜 해? 내가 하면 되지."

그런데 60 넘어서 똑같은 말을 하면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제는 "내가 하면 되지"가 아니라 "돈이 없으니 내가 해야지"가 되어버린다.

그 차이가 참 서글프다.

세입자로 늙어간다는 것도 그렇다. 렌트가 오르면 옮겨야 할 수도 있다.

집주인 사정이 바뀌어도 옮겨야 할 수 있다. 그러면 또 박스를 싸야 한다.

65살에는? 70살에는? 그때도 내가 직접 매트리스를 끌고 내려가야 하나.

그 생각을 하니까 겁이 났다.

젊었을 때 사람들이 왜 집을 마련하라고 했는지, 왜 은퇴자금을 모으라고 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노후에 돈이 없어서 슬픈 건 벤츠를 못 타서가 아니다. 유럽 여행을 못 가서도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어진다는 게 더 슬픈 것이다.

오늘도 트럭에서 마지막 박스를 내리면서 허리를 한번 폈다.

온몸이 쑤셨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다.

"젊었을 때 조금만 더 벌어놓고, 조금만 더 모아놓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