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지 동지 해 5시간 27분, 계절성 우울증 대비법 - Anchorage - 1

10월 중순만 돼도 아침 출근길이 벌써 어둑하죠. 앵커리지 겨울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분이라면 이 시기에 마음이 먼저 움츠러드는 걸 아실 거예요.

Alaska Climate Research Center 자료를 보면 동지인 12월 21일 앵커리지의 해는 오전 10시 15분쯤 떠서 오후 3시 41분에 집니다. 낮 길이가 5시간 27분이에요.

숫자로 보니까 더 실감 나지 않나요? 회사에 있는 동안 해가 뜨고 지는 셈이라, 평일엔 햇빛을 거의 못 보고 지나가는 날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맘때부터 무기력하고 잠만 늘고 탄수화물이 당긴다면 그냥 기분 탓으로 넘기지 마세요. 계절성 정동장애, 흔히 SAD라고 부르는 상태일 수 있거든요.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는 SAD를 계절 주기를 따라 나타나는 우울증의 한 형태로 설명합니다. 보통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시작해서 봄과 여름이면 가라앉는 패턴이 많아요.

증상은 일반 우울증과 많이 겹칩니다. 기분이 계속 가라앉고, 좋아하던 일에 흥미가 없어지고, 짜증이나 죄책감이 늘어나는 식이죠.

2019년 Anchorage Daily News 기사에서 Providence Alaska의 정신과 의사는 적도 지역에서는 SAD 비율이 1% 안팎인데 알래스카 같은 북쪽 지역은 10%에 가깝다고 추정했어요. 공식 통계라기보다 전문가 추정치라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 뭘 해야 할까요? NIMH가 가장 근거가 탄탄한 치료로 꼽는 건 광치료, 즉 light therapy예요.

라이트박스라는 밝은 조명 앞에 앉아서 햇빛을 흉내 내는 방식입니다. 연구와 임상에서 많이 쓰는 기준은 10,000럭스 백색광이고, 아침 시간에 쓰는 게 저녁보다 효과가 좋았다는 연구들이 있어요.

사용 시간은 자료마다 20분에서 1시간까지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처음엔 짧게 시작해서 몸 반응을 보는 게 현실적이에요.

제품 고를 때는 자외선(UV)을 걸러주는 제품인지 꼭 확인하세요. 일부 쇼핑 사이트에서 UV까지 나오는 full spectrum이 더 좋다고 홍보하는데, 피부와 눈을 생각하면 저는 반대입니다.

눈 질환이 있거나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분은 광치료를 혼자 시작하면 안 됩니다. 기분이 오히려 들뜨는 쪽으로 튈 수 있어서 반드시 의사와 먼저 이야기하셔야 해요.

두 번째는 비타민D예요. 알래스카에서는 햇빛으로 비타민D를 만들 수 있는 시기가 5월에서 8월 정도로 짧다는 UAA 연구 요약이 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기준 성인 권장량은 70세까지 하루 600IU, 71세부터는 800IU예요. 성인의 상한 섭취량은 하루 4,000IU로 정해져 있고요.

그런데 현지 칼럼에서는 알래스카 사람들이 4,000IU를 흔히 먹는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상한선에 딱 걸치는 양이라 솔직히 좀 놀랐어요.

비타민D와 SAD의 인과관계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기분 좋아지는 약처럼 기대하기보다, 혈액검사로 수치를 확인하고 용량을 정하는 게 맞아요.

음식으로 챙기는 것도 방법이에요. 연어나 할리벗 같은 생선, 비타민D 강화 우유나 시리얼을 장바구니에 넣어두면 좋습니다.

세 번째는 생활 리듬입니다. 해가 짧다고 늦잠을 자기 시작하면 리듬이 금방 무너지거든요.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주말에도 비슷하게 유지해 보세요. 점심때 해가 떠 있으면 10분이라도 밖에 나가 걷는 걸 추천합니다.

운동도 빼놓을 수 없어요. 2023년 European Psychiatry에 실린 리뷰 논문에서도 규칙적인 운동, 낮 시간 햇빛 노출, 스트레스 관리를 기본 생활 수칙으로 꼽았습니다.

그래도 안 나아진다면 상담 치료나 약물 치료를 고민할 단계예요. 인지행동치료(CBT) 같은 talking therapy와 항우울제가 SAD 치료 옵션으로 쓰입니다.

한인 분들은 특히 정신건강 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겨울 우울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빛이 부족해서 생기는 몸의 반응에 가깝습니다.

증상이 2주 넘게 이어지거나 일상이 버거울 정도라면 꼭 주치의나 약사와 상의하세요. 비타민D 영양제를 다른 약과 같이 드시는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땐 988로 전화나 문자를 하면 됩니다. 907 지역번호에서 걸면 알래스카 주의 Careline으로 연결되고, 다른 지역번호 폰이라면 1-877-266-4357로 바로 걸 수 있어요.

위급한 상황이면 망설이지 말고 911입니다. 이건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저라면 지금, 그러니까 10월부터 준비를 시작하겠어요. 12월에 증상이 나타난 뒤 라이트박스를 주문하면 이미 한참 지쳐 있을 때거든요.

아침 커피 마시면서 라이트박스 켜기, 점심 산책, 일정한 기상 시간. 이 세 가지만 습관으로 만들어도 겨울이 훨씬 덜 무겁게 느껴질 거예요.

동지만 지나면 낮은 다시 하루하루 길어집니다. 그때까지 잘 버티는 게 아니라 잘 지내는 겨울을 같이 만들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