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들어서 마트 야채 코너 지나가다가 배추 박스가 쌓인 걸 보고 잠깐 멈췄어요. 아, 김장 시즌이 오긴 오는구나 싶더라고요.
한국에 계신 엄마는 매년 김장 얘기를 하시는데, 저는 미국에서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어요. 늘 마트에서 사 먹는 쪽이었죠. 그래서 올해는 진짜 소량으로라도 해보자고 마음먹고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일단 한국 김장 타이밍부터요. 보통 하루 평균기온이 4도 아래로 떨어지는 11월 말에서 12월 초를 적기로 봐요.
참고로 201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른 건 김치라는 음식이 아니라 김장 문화예요. 같이 담그고 나누는 그 과정 자체를 인정받은 거죠.
근데 남가주는 11월 말에도 낮엔 반팔 입을 날이 꽤 있잖아요. 한국 달력을 그대로 따라갈 이유가 없다는 게 제 결론이었어요.
배추 공급 쪽을 보면 더 그래요. 배추는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에서 사실상 연중 출하되는 작물이라, 여기선 언제든 살 수는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양배추류 주산지는 몬터레이 같은 센트럴 코스트, 그리고 임피리얼과 리버사이드 같은 남부 사막 지역이에요. 해안 지역은 1년 내내 심고 거둔다고 하네요.
그럼 언제 사는 게 좋냐. 배추는 서늘한 날씨를 좋아하는 작물이라 가을에 속이 꽉 차고 맛이 들어요.
그래서 늦가을이 되면 한인마트들이 배추를 박스째 세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기준으로는 10월 말에서 11월 사이, 박스 행사가 뜨는 주말이 제일 무난해 보여요.
다만 마트 행사 날짜는 매장마다 달라서 주간 전단지를 미리 체크하는 게 확실해요. 땡스기빙 전후로 사람이 몰리니까 그 주는 피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고요.
가격은 매주 바뀌어서 여기서 얼마라고 단정하진 않을게요. 대신 같은 주에 한인마트 두세 곳 전단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꽤 보여요, 이게 제일 쉬운 절약법이에요.
배추 고를 때는 들어봤을 때 묵직한 걸로 고르세요. 겉잎이 너무 시들었거나 밑동이 검게 변한 건 패스입니다. 반 갈라서 파는 거라면 속이 노랗고 촘촘한 게 좋아요.
이제 본론인 소량 김장 얘기. 제가 잡은 기준은 배추 두세 포기, 큰 통 두 개 정도 나오는 양이에요. 아파트 부엌에서 혼자 감당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양이거든요.
박스로 사면 싸긴 한데, 두세 포기 하려는 사람한테 한 박스는 솔직히 overkill이에요. 같이 할 친구가 있으면 박스로 사서 나누는 게 가성비는 제일 좋아요.
절이는 게 사실 김장의 절반이에요. 흔히 쓰는 방법은 물 무게의 10% 정도 소금을 녹인 소금물에 배추를 담그고, 줄기 쪽에 굵은 소금을 조금 더 뿌리는 거예요.
절이는 시간은 레시피마다 차이가 꽤 커요. 한국 기준으로 겨울엔 6~7시간, 여름엔 3~4시간이라는 설명도 있어요.
남가주처럼 실내가 따뜻한 곳이면 여름 쪽 시간에 가깝게 잡고 중간중간 확인하는 게 맞다고 봐요. 줄기를 구부렸을 때 뚝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면 다 절여진 거예요.
절인 배추는 찬물에 두세 번 헹구고 물기를 충분히 빼줘야 해요. 여기서 대충 하면 김치가 싱거워지거나 통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생겨요.
시간이 없으면 한인마트에서 파는 절임배추를 사는 것도 방법이에요. 가격은 조금 더 나가도 제일 힘든 단계를 건너뛸 수 있으니까요.
무도 이때 같이 사두세요. 한국 무도 배추처럼 서늘한 가을 날씨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라, 이 시기에 사면 단단하고 단맛이 있어요.
양념은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강, 젓갈, 찹쌀풀, 무채, 쪽파 정도면 기본은 됩니다. 소량이면 굴이나 생새우는 빼도 충분히 맛있어요.
찹쌀풀은 양념이 배추 잎 사이사이에 잘 붙게 해주는 역할이라 귀찮아도 넣는 걸 추천해요. 대신 완전히 식힌 다음에 섞어야 한다는 것만 꼭 기억하세요.
소량 김장의 진짜 장점은 실패 비용이 낮다는 거예요. 첫해엔 두 포기로 감 잡고, 다음 해에 늘리면 됩니다.
보관이 은근히 문제예요. 미국에서 김치냉장고까지 갖춘 집은 생각보다 많지 않잖아요.
일반 냉장고에 넣을 거면 하루 정도 실온에서 살짝 익힌 다음 바로 넣는 게 무난해요. 실내 온도가 높으면 그 시간도 줄이는 게 좋고요.
통은 작은 걸 여러 개로 나누는 걸 추천해요. 한 통을 계속 열었다 닫으면 공기가 들어가서 금방 시어지거든요. 먼저 먹을 통과 나중에 먹을 통을 나눠두면 편해요.
냄새도 신경 쓰이죠. 룸메이트나 이웃이 있으면 뚜껑 잘 닫히는 밀폐용기에 한 번 더 지퍼백으로 감싸는 게 매너예요.
정리하면 이래요. 배추는 늦가을 박스 세일을 노리고, 양은 두세 포기로 시작하고, 절이는 시간은 날씨에 맞춰 줄이는 거예요.
아마 제일 큰 수확은 김치 자체보다 엄마랑 영상통화 켜놓고 같이 버무리는 시간일 것 같아요. 유네스코가 왜 음식이 아니라 문화를 등재했는지 거기서 좀 알게 되지 않을까 싶고요.
저는 올해 11월 초 주말로 날 잡았어요. 여러분도 한 번쯤 소량으로 도전해 보세요, 생각보다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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