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파소에 살다 보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도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Que pasó?"입니다. 무슨 일이야? 영어로 치면 "What's up?" 또는 "What happened?" 정도의 느낌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이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Que pasó? El Paso? 발음이 비슷해서인지, 이 도시 이름 자체가 늘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도시, 뭔가 계속 돌아가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엘파소에 정착하고 10년정도 살아보니, 엘파소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참 많은 일이 오가는 도시입니다.
미국 도시이지만 거리에서는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마트에서, 식당에서, 심지어 관공서에서도 "Buenos días"라는 인사가 먼저 나옵니다. 이곳에서는 스페인어가 외국어가 아니라 생활어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면 자연스럽게 국경을 의식하게 됩니다.
엘파소와 바로 붙어 있는 멕시코 도시가 시우다드 후아레스입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다른 나라입니다.
후아레스는 인구 150만 명이 넘는 큰 산업도시이고, 미국 기업 공장도 많아 경제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약 카르텔 폭력으로 악명이 높았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2008년부터 몇 년 동안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불릴 정도로 살인율이 높았습니다. 지금은 치안이 많이 안정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위험 지역이라는 인식은 남아 있습니다.
이 두 도시의 대비는 정말 극적입니다. 국경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대도시 중 하나이고, 다른 한쪽은 한때 세계 최악의 범죄 도시였습니다. 밤에 엘파소 언덕에서 후아레스 쪽을 바라보면 불빛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 풍경을 보면 묘한 생각이 듭니다. 같은 도시권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이 국경의 긴장감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바로 영화 Sicario입니다.
영화 Sicario는 엘파소와 후아레스 국경 지역을 배경으로 마약 카르텔과 미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다룹니다. 영화 속 장면처럼 FBI, CIA, 특수부대가 움직이고, 국경을 넘는 터널과 밀수 루트가 등장합니다. 물론 영화는 극적인 연출이 많지만, 이 지역이 미국 안보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보여주는 데는 꽤 현실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연방 기관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국경순찰대(Border Patrol), 이민세관단속국(ICE), 세관국경보호청(CBP) 같은 기관의 시설과 차량을 일상처럼 보게 됩니다. 군 시설도 크고, 연방 건물도 많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왜 이렇게 정부 기관이 많나 싶었는데, 살다 보니 이유가 보입니다. 이 도시는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미국 남서부 국경 관리의 핵심 거점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미국이 멕시코를 주적으로 본다기보다, 잠재적인 리스크로 보고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불법 이민, 마약 밀수, 인신매매 같은 문제들이 실제로 국경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공항, 도로, 심지어 작은 검문소까지도 보안 분위기가 강합니다. 외부 사람들은 긴장된 도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관리 덕분에 안정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습니다.
엘파소의 일상은 참 묘합니다. 아침에는 스페인어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고, 점심에는 타코를 먹고, 저녁에는 미국식 슈퍼에서 장을 봅니다. 문화적으로는 미국과 멕시코가 섞여 있지만, 생활은 생각보다 평온합니다.
저 역시 가끔 운전하면서 혼자 중얼거립니다. Que pasó? El Paso? 이 도시는 항상 뭔가 일어나고 있지만, 동시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흘러갑니다. 국경의 긴장과 일상의 평온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미국이면서도 라틴 문화가 깊게 살아 있는 곳. 그리고 연방 정부의 시선이 늘 머물러 있는 도시.
그래서인지 엘파소는 단순한 지방 도시라기보다, 미국이 멕시코 국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하는지를 보여주는 미국 정부의 눈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스크를 쓴 미국남자 | 
미국 지역 정보 로컬 뉴스 | 
투자정보 뉴스 업데이트 | 
미국 부동산 정보의 모든것 | 
낙지짬뽕 스핀 킬러 |
토멕스 기관차 아저씨 | 

Spicy 매운맛 이민생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