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커키에 처음 가보면 제일 먼저 느끼는 게 '여긴 미국이지만 뭔가 다르다'는 거예요.

좀 오래된 기록이지만 201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인구가 약 54만 5천 명 정도인데, 이 중 거의 절반이 히스패닉이에요.

그러니까 분위기부터가 완전히 라틴풍이죠. 거리 이름만 봐도 스페인어가 가득해요. 조금만 나가도 '산타페', '로스 루나스', '리오 란초' 이런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죠. 덕분에 영어보다 스페인어 간판이 더 눈에 띄는 곳도 많아요.

백인이 70% 정도라고는 하지만, 실제 거리에서 체감하는 건 조금 달라요. 흑인은 3% 정도밖에 안 되고, 미국 원주민과 아시아계가 조금씩 섞여 있어요. 그래서인지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를 보면 흑인 캐릭터가 거의 안 나오는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이건 단순히 연출이 아니라 현실 반영이에요. 그만큼 이 도시는 히스패닉 문화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죠. 그렇다고 멕시코 도시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여기는 어디까지나 미국이고, 영어가 기본 언어예요. 공공기관, 마트, 식당 어디를 가도 영어로 충분히 통합니다. 다만 재미있는 건,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와 스페인어를 둘 다 쓸 줄 알아요.

어떤 사람은 영어로 시작해서 스페인어로 끝내기도 하고, 반대로 스페인어로 얘기하다가 영어로 마무리하기도 하죠. 마치 두 언어를 리듬감 있게 섞어 쓰는 게 일상인 도시예요.

그래서 앨버커키에 있으면 마치 미국과 멕시코의 중간쯤에 있는 기분이 듭니다. 햇살은 강렬하고, 거리의 색감은 따뜻하고, 사람들의 억양도 살짝 스페인어가 섞여 있어서 듣기만 해도 정이 가요. 이

런 도시 분위기가 브레이킹 배드 같은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인 이유겠죠. 어쩌면 앨버커키는 미국 안의 또 다른 미국, '스페인어가 숨 쉬는 미국'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의 앨버커키 지역에는 푸에블로 원주민들이 살았어요. 12세기 무렵부터 리오 그란데 강 주변의 비옥한 땅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흙벽돌로 만든 집에서 살았죠.

지금도 남서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도비 건축 양식이 바로 그들의 유산이에요. 그러다 1500년대 중반, 스페인 탐험가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가 이 지역을 지나며 유럽 세계에 처음으로 알리게 됩니다.

이후 1706년, 스페인 총독 프란시스코 쿠에르보 이 발데스가 '알부르케르케'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세웠는데, 이는 스페인 귀족 '알바의 공작'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중심지에는 성 프란시스코 데 나바로 교회가 세워졌고, 지금의 올드타운이 바로 그때 만들어진 곳이죠.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앨버커키도 멕시코 영토가 되었지만,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 이후 미국 땅이 되었어요. 특히 1880년에 철도가 들어오면서 도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때 새로 만들어진 철도 마을이 지금의 다운타운으로 발전했어요.

1912년, 뉴멕시코가 미국의 47번째 주로 승격되면서 앨버커키는 주도급 도시로 성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군사와 항공우주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죠. 샌디아 국립연구소와 커틀랜드 공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첨단 기술의 도시로 자리 잡았어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루트 66'이에요.

여행자들이 서부로 이동할 때 꼭 거쳐야 했던 길이라, 도심 곳곳에 모텔, 다이너, 주유소가 생기며 관광 산업이 활짝 피었죠. 지금도 루트 66 거리를 걷다 보면 1950년대의 미국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이후 1972년, 첫 번째 '앨버커키 국제 열기구 축제'가 열리며 도시의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매년 가을마다 하늘을 가득 메우는 형형색색의 열기구는 이제 이 도시의 상징이 되었죠. 요즘의 앨버커키는 기술, 의료, 에너지 산업이 발달한 현대 도시이면서도, 동시에 역사와 전통을 잃지 않은 곳이에요.

올드타운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300년 전 스페인 시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조금만 벗어나면 최첨단 연구소와 현대식 빌딩이 어우러져 있어요.

그래서 앨버커키를 방문하면 단순히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