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내 아침 식탁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존재다.

나는 텍사스 오스틴에 사는 평범한 두아이의 아빠이지만, 크림치즈 하나에 관해서는 꽤 진지한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프트 크림치즈의 매력에 중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접한 건 몇 년 전, 베이글 가게에서였다.

갓 구운 따뜻한 베이글에 하얀 크림치즈를 두툼하게 발라준 걸 한입 베어무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그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솔직히 살짝 놀랐다.

그전까진 크림치즈 하면 딱딱하고 단조로운 맛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히 달랐다.

부드럽게 퍼지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적당히 신맛과 짠맛이 조화스럽게 깔끔했다.

기름지지 않은데, 충분히 진한 맛.

이게 바로 미국적인 풍요와 여유를 담은 맛이구나 싶었다.

그 후로 나는 크림치즈 팬이 되었다.

식빵, 크래커, 브리오슈, 심지어 감자칩에도 발라 먹어봤다.

아니, 웬만한 탄수화물이라면 뭐든지 궁합이 좋았다.

한 번은 아보카도 슬라이스와 함께 오픈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크림치즈가 모든 재료를 잡아주면서도 재료 하나하나의 개성을 해치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 매끄럽고 부드러운 텍스처, 입안을 감싸는 풍미는 한국 음식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 음식엔 이런 '소프트한 고소함'이 거의 없다.

된장이나 참기름처럼 땅의 풍미를 담은 짠맛, 고추장의 매콤달콤함, 김치의 발효된 시큼함은 익숙하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차분한 ‘유제품의 미학’은 미국에서 처음 경험한 맛의 세계였다.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발라먹는 치즈가 아니다.

이민자로서 새로운 음식문화를 경험하게 해준 입문자용 미국의 감성 요리 재료다.

나는 때때로 토마토와 바질, 크림치즈를 조합해서 브런치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럴 땐, 집안 가득히 뉴욕 느낌이 물씬 풍기는 듯하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조합을 즐기면, 마치 브루클린의 어느 작은 카페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건 정말 한국에선 느껴보기 힘든 미국의 맛이구나.”

물론, 한국에도 이제 수입 크림치즈가 넘쳐난다.

하지만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푹푹 발라 먹는 문화, 그걸 아침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감성은 여전히 미국에서만 제대로 느껴지는 일종의 ‘식탁 위의 자유’ 같다.

가끔은 고추장 비빔밥도 먹고, 김치찌개에 밥 한 술 떠서 후루룩 먹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냉장고에는 꼭 필라델피아 크림치즈가 있다.

한국의 음식이 내 뿌리라면, 크림치즈는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 같은 존재다.

텍사스의 해 뜨는 아침, 햇살 좋은 베란다에서 베이글 위에 소복이 올려진 크림치즈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속으로 작게 읊조린다.

"이 부드럽고 고소한 미국의 맛."

결국 내가 뿌리내리고 사는곳이 고향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