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다. IT 관련업무를 하는데 연봉은 나쁘지 않지만 여기 살수록 생활비가 너무 나가서 걱정이 된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만 해도 "비싸긴 한데 뭐, 살 만하네" 정도였는데, 팬데믹 지나고 나서 렌트비는 계속 오르고 생활 여유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슬슬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싼곳으로 이사들 많이 가는데 나는 계속 살아도 되나?"
그래서 렌트 좀 덜 나가는 동네를 찾아보게 됐고, 알아보다 보니 미국 젊은이들의 이사 패턴이 진짜 장난 아니다 싶더라. 통계에 따르면, 15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미국 대도시의 20~30대는 평균 2.3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거의 매년 짐을 싸고 도시를 옮긴다. 나처럼 한 동네에서 십 년 버티는 건 거의 고인물 취급이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다. 이쪽은 직장 이동이 활발하고, 집값이나 세금, 날씨 같은 요소들도 이사 결정에 영향을 많이 준다.
"이직 = 연봉 상승 + 삶의 질 개선"이라는 공식도 있어서, 좋은 조건 생기면 바로 짐 싸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한국처럼 '웬만하면 버텨본다'는 정서랑은 좀 다르다.
그런데 말이 쉽지, 실제로 이사 한 번 하려면 돈이 진짜 많이 든다.
나도 최근에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불과 20분 떨어진 동네로 옮겨볼까 하고 견적을 받아봤는데... 1베드 살림인데도 포장이사 견적이 $1,200 나왔다. 크레이그리스트에서 찾은 독립업체 불러도 $800은 기본이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상자 몇 개밖에 없는데도, 이쪽은 이삿짐 업체들이 트럭 운행 거리, 주차 공간, 엘리베이터 유무, 계단 몇 층인지까지 전부 세세하게 계산해서 돈을 붙인다.
그럼 아예 멀리 가면 어떨까? 요즘 샌프란시스코에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유타, 아리조나 같은 데는 집값도 싸고 공기도 맑고, 살기 괜찮다는 말이 많다. 나도 궁금해서 알아봤다. 그런데 여기서 피닉스나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사 가려면 $3,000~$4,500은 그냥 깨진다.
더 먼 텍사스나 조지아, 플로리다로 이사하면? 말 안 해도 알 거다. 최근에 지인 한 명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오스틴으로 이사했는데, $5,000 넘게 썼다고 했다. 심지어 '가장 저렴한' 업체로 골라서 썼는데도 그랬다. 이사비가 아예 렌트비 절약 효과를 다 잡아먹는 수준이라, 이사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짐 싸고, 트럭 부르고, 청소하고, 가구 재배치하고... 그 시간과 스트레스는 따로 계산도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이사 결심했다가도 견적서 하나 보고 바로 마음 접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유타 집값 보고 "와, 이건 진짜 이사해야지" 싶다가도 $4,000짜리 이사짐 운송 견적서 한 장 보면, 그냥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고민하게 된다.
물론 미국에서 이사를 자주 하는 데는 문화적인 배경도 있다. 이곳은 한 자리에 오래 정착하는 걸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젊은 층은 이직도 자주 하고, 그게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강하다. 새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 출발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근데 나는 아직도 좀 고민된다. 삶 전체를 리셋해야 하는 게 이사니까. 단순히 주소를 옮기는 게 아니라, 익숙한 공간, 익숙한 동네, 익숙한 생활 패턴을 다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렌트비가 저렴한 곳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주위친구들에게 언급을 몇 번 했더니도 요즘 자주 듣는 말은 이거다.
"Where are you moving next?"
그 말 들을 때마다 나도 "어디로 갈까..." 생각은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또 어느새 몇 달이 지난다.
어쩌면 이사도 결국, 마음이 아니라 통장이 결정하는 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