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시카고에서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와 있다. 전공은 화학이다. 한국에서부터 계속하고 있는 연구도 하고, 학부 수업도 맡아 하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고 있다.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워낙 많다 보니, 밥을 제대로 챙겨 먹기가 어렵다.
내 나이 마흔. 독신이고, 특별히 가족이 이곳에 있는 것도 아니라 대부분 혼자 해결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귀찮을 땐 하루 세 끼를 컵라면으로 때우기도 했다. 바쁜 실험 중간에 물만 붓고 3분이면 해결되니까 너무 편했기 때문이다. 맛도 있고, 빨리 먹고 다시 일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쌓이니까 문제가 생기는걸 느꼈다.
처음엔 그냥 피곤한 줄만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고, 머리가 맑지 않고, 몸이 계속 무거웠다. 그러다 어느 날은 감기처럼 오한이 오기도 하고, 피부도 발진이 자주생기고 없어지고 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시카고 날씨 탓인가 싶어 따뜻한 차도 마셔보고, 종합비타민도 챙겨 먹어봤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혈액검사까지 받았는데, 의사는 말하길 "특별한 병은 없지만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문득 내 식습관이 떠올랐다. 컵라면. 한동안 너무 자주 먹었다. 일주일에 최소 6-8 번은 컵라면 아니면 인스턴트 냉동식품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을 먹고 바꿔보기로 했다.
우선 가장 먼저 실천한 건 밀가루 줄이기였다. 컵라면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스턴트 음식이 정제된 밀가루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나니, 가장 먼저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정말 어려웠다. 라면 없이는 하루가 허전하더라. 배는 불러도 뭔가 허전하고, 속도 심심했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고 느꼈다.
그래도 억지로 참았다. 대신 현미밥을 한 번에 많이 지어서 냉동실에 소분해놓고, 반찬은 시판 김치랑 삶은 달걀, 연어캔 같은 걸로 구성했다. 간단하지만 '진짜 음식'으로 식단을 바꾸기 시작한 거다.
일주일이 지나자 변화가 조금씩 느껴졌다. 일단 속이 덜 더부룩했고, 화장실 가는 것도 훨씬 편했다. 이게 밀가루 때문이었나? 싶었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다음 주였다.
이상하게도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수월해졌고, 실험실에서 오래 있어도 피로감이 전처럼 심하게 오지 않았다. 집중력도 올라갔다. 무엇보다 감기 기운처럼 느껴지던 잔기침이나 목 건조함이 사라졌다.
정말 밀가루 때문일까?
나는 화학 전공이다. 원래 의심이 많은 편이라 뭐든 이과적으로 해석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논문도 찾아보고, 자료도 뒤져봤다.
그 결과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밀가루, 특히 정제된 밀가루는 장내 환경을 악화시키고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장은 면역세포의 70% 이상이 분포하는 기관이라, 장 건강이 곧 면역력과 직결된다는 얘기다. 컵라면처럼 방부제와 나트륨이 많은 음식은 장을 더 예민하게 만들 수 있고, 반복적으로 먹으면 면역체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제야 확실히 느꼈다. 내가 그동안 몸이 안 좋았던 이유 중 큰 부분이 식습관이었구나.
요즘도 바쁜 건 마찬가지다. 실험 결과 기다리면서 조급해질 때도 있고, 논문 마감에 쫓기기도 한다. 그래도 컵라면은 이제 거의 안 먹는다. 아주 가끔 치팅데이로 먹는 날은 있지만, 대부분은 최소한 밥 한 끼는 '진짜 음식'으로 챙긴다.
시카고 생활은 여전히 외롭고, 교수라는 직업은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그래도 몸이 조금씩 회복되니까 마음도 달라진다.
혹시 지금 컵라면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달고 살면서 몸이 괜히 무거운 분이 있다면, 한번쯤 밀가루 줄이기를 시도해보시길 바란다.
생각보다 큰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이곳 시카고에서 실험만 하던 화학 교수가 몸으로 직접 느낀 실험 결과. 오늘은 이걸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