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살다가 어스틴 이사 오니까 가을 환절기가 다르네요 - Austin - 1

LA에서 오래 살다가 텍사스 어스틴으로 이사 오면 가을 날씨가 참 재미있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분명 10월인데 낮에는 여전히 덥고, 아침에는 제법 쌀쌀하거든요.

이제 가을이 왔나 싶어서 긴팔을 꺼내놓으면 며칠 뒤에는 다시 에어컨을 켜게 됩니다.

LA도 가을에 갑자기 더워지는 날이 있긴 하죠. 바로 샌타아나 바람 때문입니다.

사막 쪽에서 산을 넘어 내려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인데, 가을인데도 한여름처럼 느껴지는 날이 생깁니다.

그런데 어스틴의 가을 더위는 조금 다릅니다.

어스틴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공기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가 서로 밀고 당기면서 계절이 바뀌는 지역이에요.

특히 어스틴 서쪽에 있는 텍사스 힐컨트리까지 생각하면 가을 날씨가 더 흥미롭습니다.

힐컨트리는 이름 그대로 언덕과 계곡이 이어지는 지역입니다. 드리핑스프링스, 드리프트우드, 존슨시티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죠.

이 지역은 어스틴 도심보다 지형이 높고 복잡한 곳이 많아서 밤사이 찬 공기가 낮은 지대로 모이면 계곡이나 저지대의 아침 기온이 더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스틴 시내에서는 아침에 가벼운 긴팔이면 충분한데, 힐컨트리 외곽에서는 재킷이 생각나는 날도 있습니다.

실제 기온 자료를 보면 이런 차이가 더 실감 납니다.

미국 국립기상청의 1991~2020년 평년 자료에 따르면 어스틴 버그스트롬 공항의 10월 평균 최고기온은 약 83°F, 섭씨 28도 정도입니다.

숫자만 보면 가을이 순조롭게 깊어가는 것 같죠? 그런데 실제 날씨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25년 10월 어스틴 버그스트롬 공항에서는 낮 기온이 90°F 이상 올라간 날이 무려 21일이나 있었습니다.

한 달 안에 여름 같은 더위와 겨울을 앞둔 쌀쌀함이 모두 나타난 셈이죠. 이 정도면 옷장을 정리하기가 참 애매하겠죠.

이런 변화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한랭전선, 영어로 Cold Front 때문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캐나다와 미국 북부에서 차가운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전까지 어스틴에는 멕시코만에서 올라온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머물러 있을 수 있어요.

남풍이 불면 기온이 다시 올라갑니다. 낮에는 80°F 후반이나 90°F 가까이 올라가면서 여름이 돌아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러다가 북쪽에서 강한 한랭전선이 내려오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바람 방향이 바뀌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어제까지 반팔을 입던 사람이 다음 날에는 재킷을 찾게 되는 거예요.

물론 한랭전선이 올 때마다 기온이 그렇게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선의 강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스틴의 가을이 불편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텍사스에서 가장 좋은 계절 중 하나가 가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낮에 걷기도 부담스럽던 곳들이 10월 말부터는 한결 편해지거든요.

바튼크릭 그린벨트나 레이디버드레이크 주변을 걷기에도 좋고, 힐컨트리 쪽으로 드라이브를 나가기도 좋은 시기입니다.

단풍도 북동부처럼 9월부터 화려하게 시작되는 건 아니지만, 힐컨트리에서는 늦가을로 갈수록 나무들이 조금씩 색을 바꿉니다.

다만 텍사스의 단풍은 지역과 그해 날씨에 따라 시기가 달라요. 가을이라고 무조건 울긋불긋한 풍경을 기대하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올해 2026년 10월도 어스틴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0월 9일 어스틴 버그스트롬 공항에서는 낮 최고기온이 92°F까지 올라갔습니다. 평년보다 7°F 높은 기온이었죠.

그리고 10월 11일 국립기상청 예보에서는 주중까지 따뜻하고 습한 날씨가 이어진 뒤, 주 후반에 한랭전선이 접근하면서 기온이 내려갈 가능성을 안내했습니다.

그러니까 10월이라고 해서 여름옷을 다 넣어버릴 시기는 아직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LA에서 살 때는 가을에 뜨거운 샌타아나 바람이 불면 참 별나다고 생각했는데, 어스틴에 와보니 여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가을이 변덕을 부립니다.

아침에 쌀쌀하다고 두꺼운 옷을 입고 나갔다가 오후에 땀을 흘릴 수도 있고, 낮에 덥다고 방심했다가 저녁에 추워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날씨가 싫지만은 않습니다. 길고 무더웠던 텍사스 여름이 드디어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어스틴의 가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여름과 겨울이 몇 번씩 실랑이를 벌이다가 조금씩 자리를 바꾸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