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돈도 비치 갔던 날, 남편과 밥먹고 산책하는데, 멀리서 뭔가 부표위에 시커멓게 쌓여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자세히 보니까 세상에... 물개가 무려 열 마리도 넘게 서로 몸을 포개고 층을 만들어가며 낮잠을 자고 있는 거예요.

그냥 눕는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다닥다닥 붙어 쌓여있더라니까요. 맨 아래 친구는 '아휴 무겁다' 싶은 얼굴인데도 꼼짝도 안 하고, 위에 올라탄 놈은 얼굴을 배에 파묻고 쿨쿨 자고, 또 그 위에 한 놈이 넙죽 엎드려 있고...

근데 멀어서 잘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가방에서 줌 있는 울트라 24 들고 줌을 쫘악 땡겼죠. 화면에 꽉 차는 물개들 얼굴, 그 뿔테같은 수염, 꾸벅꾸벅 졸다가 입 반쯤 벌리고 하품하는 모습... 캬, 이게 바로 바다판 찜질방이구나 싶었습니다.

서로 몸을 의자 삼고, 쿠션 삼고, 담요 삼는 거죠. 위에 있는 애는 편하겠지만 아래 깔린 애는 무슨 죄냐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어요. 근데 또 신기한 건 아무도 싸우지 않아요.

사람이었으면 자리싸움 나고, "왜 내 위에 올라타?" 한마디 했을 텐데 얘들은 그냥 묵묵히 버티고 자요. 이런 걸 보면 동물이 우리보다 낫다는 소리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줌 땡겨서 찍은 사진 확인해보는데 말 그대로 예술입니다. 배에 살짝 묻은 물기, 햇살에 반짝이는 털, 서로 기대서 숨소리 맞춰 자는 모습까지 다 살아있었어요.

마치 다큐멘터리 한 장면 같더라니까요. 어떤 애는 눈만 반쯤 뜨고 '여기 지금 파파라치 왔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또 귀엽고, 어떤 애는 아예 기절한 듯 뒤집어져 자는데 배가 하얗게 드러나서 간지럽히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어요

곁에 있던 여행객 아줌마들도 제 카메라 화면 보고는 "어머 얘 세상 편안하네" 하며 한참 웃었어요.

물개가 코 고는지 숨 쉬는지 진동까지 느껴질 것만 같은 모습. 바닷바람 맞으며 층층이 쌓여 자는 모습 보니까 세상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싶더라고요. 우리도 이렇게 서로 기대고 사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돈 걱정, 시간 걱정, 아이 숙제 걱정 다 내려놓고 말이죠.

그냥 햇살 아래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아 오늘 살 만하다"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날 찍은 사진은 아직도 폰 배경으로 쓰고 있어요.

볼 때마다 마음이 말랑해지고, 내가 좀 급하게 살고 있구나 싶을 때 잠시 숨 고르게 해줍니다.

레돈도 비치에서 본 물개들의 낮잠 타워, 정말 잊기 힘든 풍경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