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모들은 왜 가을마다 아이 데리고 사과 따러 갈까 - San Fernando - 1

지난 주말 아침, 프리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한참 달려 Oak Glen에 다녀왔습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놀랐어요. 미니밴과 SUV가 줄지어 서 있고, 차 문이 열릴 때마다 아이들이 뛰어나오더군요.

사과야 동네 마트에 가면 일 년 내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왜 미국 부모들은 가을만 되면 몇 시간씩 운전해서 굳이 산속 과수원까지 가는 걸까요. 이번에는 그 이유를 좀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완전히 오해했어요. 이민 와서 처음 이 풍경을 봤을 때, 마트보다 비싼 사과를 직접 따면서 돈까지 내는 게 이해가 안 갔거든요. 한국식 계산으로는 손해 보는 장사였습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 건 과수원 안에서였습니다. 바구니를 든 한 아빠가 웃으면서 이러더군요. "We're not here for the apples, really."

사과 때문에 온 게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반나절 지켜보니 그 말이 정답에 가깝더라고요.

먼저 이 동네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Oak Glen은 해발 4,734피트, 샌버나디노에서 동쪽으로 15마일 떨어진 산골 마을입니다. 카운티 자료에 따르면 Enoch Parrish라는 사람이 1876년에 이곳 첫 사과 과수원을 심었다고 합니다.

이 동네가 관광지로 뜬 건 1940년대였습니다. 몇몇 농장이 사과뿐 아니라 애플파이, 애플버터, 사이다를 팔기 시작하면서 하루아침에 붐타운이 됐다고 해요.

지금은 연간 30만 명 넘는 방문객이 찾는다고 카운티가 소개하고 있습니다. 숫자를 보고 저도 좀 놀랐어요. 작은 산골 마을치고는 대단한 규모입니다.

그럼 "직접 따는" 문화는 언제 시작됐을까요. 뿌리를 찾아보니 의외로 대공황이었습니다.

1932년 위스콘신 Door County의 체리 농가들은 통조림 공장이 파운드당 1센트밖에 못 준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따서 넘기는 인건비가 더 드니 나무에서 썩히는 게 낫다는 계산이 나왔죠.

그래서 농민들이 신문과 라디오에 광고를 냈습니다. 파운드당 1페니, 대신 직접 따 가라는 거였어요.

반응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한 과수원에는 차로 올 수 있는 130개 마을에서 1만 명이 몰려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U-pick은 처음엔 낭만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미국식 실용주의가 그대로 보이거든요.

이 방식이 다시 살아난 건 1970~80년대였습니다. 터스키기 대학의 농학 교수 Booker T. Whatley가 소농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pick-your-own을 적극적으로 권했죠.

그의 관찰이 재미있습니다. 손님들이 과일만큼이나 시골 분위기를 즐기러 온다는 거였어요. 반세기 전 이야기인데, 지난 주말 그 아빠의 말과 똑같습니다.

사과에 얽힌 미국인들의 정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릴 때 동화로 배우는 Johnny Appleseed, 본명 John Chapman은 1774년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 1845년 인디애나에서 세상을 떠난 실존 인물입니다.

동화 속에선 씨앗 자루를 메고 떠도는 착한 방랑자지만, 실제로는 땅을 사고팔며 과수원을 키운 꼼꼼한 사업가였다고 해요. 심은 사과도 대부분 먹기보다 사이다용이었답니다.

사실이야 어떻든 미국 아이들은 사과를 개척 시대, 가을, 가족과 묶어서 기억합니다. 이게 문화의 힘이구나 싶었습니다.

현장으로 돌아가 보죠. 나무 사이를 걸어보니 부모들이 정작 사과는 별로 안 땁니다. 아이들이 사다리 옆에서 낑낑대는 걸 사진 찍느라 바빠요.

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가 벌레 먹은 사과를 들고 와서 "Mom, is this okay?" 하고 묻습니다. 엄마는 웃으면서 그것도 사과라고 대답해 줍니다.

마트 진열대에선 절대 배울 수 없는 장면입니다. 사과가 나무에 달려 있고, 흠도 있고, 계절이 지나면 없어진다는 걸 몸으로 배우는 거죠.

그 옆 가판대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이렇게 다들 가을에만 몰려오냐고요.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It's tradition, their parents brought them here and now they bring their kids." 부모가 데려왔던 곳에 이제 자기 아이를 데려온다는 거예요.

저는 이 말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미국은 이사가 잦은 나라라 고향이라는 개념이 한국보다 옅어요. 대신 해마다 돌아오는 행사가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 같습니다.

할로윈 호박밭, 추수감사절 칠면조, 그리고 가을 사과 따기. 날짜와 장소가 정해진 반복이 가족의 기억을 붙잡아 두는 겁니다.

제 실패담도 하나 털어놓겠습니다. 예전에 아는 집 아이들까지 데리고 처음 왔을 때, 본전 뽑겠다고 바구니를 꽉꽉 채우게 했어요.

결과는 뻔했습니다. 아이들은 30분 만에 지쳐서 칭얼댔고, 집에 가져온 사과 절반은 결국 버렸지요. 사과가 목적이 아니었는데 저 혼자 사과를 셌던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합니다. 바구니는 작은 걸로, 시간은 넉넉하게, 그리고 애플파이 한 조각으로 마무리하는 거죠.

미국 부모들이 가을마다 과수원에 가는 이유, 결국 사과보다 그 하루를 사러 가는 겁니다. 저는 이 문화가 꽤 마음에 듭니다. 올가을 한 번쯤은 마트 대신 과수원 쪽으로 핸들을 돌려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