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정말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차분하게 설명해도 안 듣습니다.
증명할 자료를 보여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반대되는 사실이 나와도 아예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그냥 고집이 세다고.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건 단순한 고집보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너무 단단하게 잠겨 있어서, 새로운 말을 들을 통로 자체가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이걸 어렵게 말하면 세뇌나 영어로 브레인 와시된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레인 워시, 흔히 말하는 세뇌는 사람의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굳게 묶어 두는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어떤 의견을 믿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다른 의견이나 증거가 나와도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마음이 닫혀 있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특정 집단이나 사람에 대해 강하게 믿고 있는데, 반대되는 사실을 보여줘도 "그건 거짓이야"라고 바로 밀어내 버리는 경우입니다. 세뇌는 보통 반복적인 메시지, 강한 집단 분위기, 그리고 의심을 나쁜 것으로 만드는 환경 속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세뇌의 핵심은 믿음 자체보다 의심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뇌라고 하면 이상한 종교 단체나 독재 국가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가까운 곳에도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정치 집단, 팬덤, 심지어 친구들끼리의 문화 안에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생각을 믿고 있느냐보다, 그 생각을 어떻게 믿고 있느냐입니다.
옛날 철학자 니체는 인간이 정말 진실을 원하는지 의심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진실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실보다 내가 맞다는 느낌을 더 원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실이 꼭 기분 좋은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나를 틀린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학생이 자기는 공부를 못하는 이유가 선생님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그냥 불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시험을 망쳐도 선생님 탓, 숙제를 안 해도 선생님 탓, 다른 친구가 성적이 잘 나와도 편애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쯤 되면 문제는 성적이 아니라 믿음의 구조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기 생각을 바꿀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철학자 크리스 라날리는 이런 상태를 설명하면서 세뇌는 믿음이 외부와 차단된 상태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 생각 주위에 벽을 쳐 놓은 것입니다. 밖에서 아무 말이 들어와도 그 벽에 튕겨 나갑니다. 반대 의견이 들어오면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적으로 분류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누가 반대 의견을 내면 저 사람은 몰라서 저래, 저건 거짓말이야, 저건 우리를 흔들려는 수작이야, 저 사람은 나쁜 의도를 가졌어. 이렇게 자동으로 방어가 작동합니다. 다시 말해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들어오기도 전에 차단하는 것입니다.
이게 왜 무섭냐면, 똑똑한 사람도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뇌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멍청한 것은 아닙니다. 말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고, 논리도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더 강하게 자기 생각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의심하는 걸 위험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국뽕에 가득찬 한국의 유튜버를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해봅시다.
그 유튜버가 하는 말은 전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그 유튜버가 틀린 정보를 말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럴 때 원래는 아, 그 부분은 틀릴 수도 있겠네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뇌에 가까운 상태가 되면 반응이 다릅니다. 그 영상은 조작된 거야. 저 사람들은 원래 그 채널 싫어하잖아. 유명해지니까 공격하는 거지. 이렇게 바로 방어합니다. 사실을 검토하는 게 아니라, 믿음을 지키는 게 먼저가 됩니다.
팬덤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아이돌의 실수나 문제를 말했을 때, 사실인지 아닌지 보기 전에 무조건 악플러 취급부터 하면 위험해집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전부 밀어내기 시작하면 생각이 닫히기 시작합니다.
정치 이야기는 더 심합니다. 어느 편을 지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내 편이 하면 다 정의롭고, 상대편이 하면 다 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사실보다 진영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 상태에서는 뉴스도 그냥 정보가 아니라 내 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로만 읽게 됩니다.
그래서 세뇌된 사람과 말다툼을 하면 벽이랑 싸우는 느낌이 납니다. 분명히 말은 하고 있는데 서로 정보가 오가는 게 아닙니다. 한쪽은 설명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방어만 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내 말을 듣는 게 아니라 공격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합니다.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료를 더 많이 들고 오고, 더 날카롭게 반박하고, 더 세게 비웃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반대로 갑니다. 사람은 공격받는다고 느끼면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더 닫아 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의심은 무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어 온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건, 그냥 정보 하나를 고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자존심이 흔들리는 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친구 관계가 흔들리는 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누구인지 자체가 흔들리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 사이에서 다 같이 믿는 분위기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혼자만 거기에 의문을 가지면 어떨까요. 괜히 배신자처럼 보일 수도 있고, 눈치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틀렸다는 증거가 보여도 그냥 모른 척할 때가 많습니다. 진실보다 소속감이 더 무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틀렸다고 몰아붙이는 대신,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더 낫습니다. 정말 그럴까. 반대 경우가 나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네가 싫어하는 사람이 똑같이 말했다면 믿었을까. 이런 질문은 공격보다 훨씬 덜 위협적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비웃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창피를 당하면 생각을 고치기보다 체면을 지키려 합니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면 그 자리에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흔들려도 끝까지 버팁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강한 일입니다. 틀릴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자기 편, 자기 취향, 자기 믿음에서 한 발 물러나 다시 보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합니다.
결국 세뇌를 고치는 첫걸음은 더 많은 소리보다 더 안전한 분위기일 수 있습니다. 의심해도 괜찮고, 질문해도 괜찮고, 생각을 바꿔도 괜찮다는 느낌이 있어야 사람은 조금씩 문을 엽니다. 누군가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 사람이 틀릴 자유를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똑똑한 사람이 정답을 빨리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짜 똑똑한 사람은 어쩌면 자기 생각을 다시 볼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무조건 믿는 사람보다, 흔들릴 수 있어도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 더 강합니다. 세상은 원래 복잡하고, 사람은 원래 자주 틀립니다.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것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다는 여유입니다. 그 여유가 없는 순간, 누구든 쉽게 닫힌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athywhite | 
투자초보기업정보백과 | 
Folding Instructions | 
Angelo Los | 
타잔의 즐거운 상상 | 
스파게티 날고있는 종교 | 
둥글게 둥글게 동요천국 | 

건강 지역 생생정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