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사이드 150년 넘은 오렌지 나무, 네이블 산업의 시작 - Riverside - 1

매그놀리아 애비뉴를 달리다 알링턴 애비뉴 교차로에 신호 걸리면, 길모퉁이에 철책 두른 나무 한 그루가 보여요. 처음엔 그냥 작은 공원 조경수인 줄 알았어요.

근데 알고 보니 이 나무가 캘리포니아 네이블 오렌지 산업의 출발점이라고 불리는 Parent Washington Navel Orange Tree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 들었을 땐 좀 과장 아닌가 싶었어요.

이야기는 브라질 바이아에서 시작돼요. 19세기 초 바이아의 한 수도원 과수원에서 오렌지 나무에 돌연변이가 생겼다고 전해지거든요.

그 열매는 꼭지 반대편에 배꼽처럼 작은 열매가 하나 더 붙어 있고, 무엇보다 씨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름이 navel, 배꼽 오렌지가 된 거예요.

씨가 없다는 건 먹는 사람한테는 축복인데, 나무 입장에서는 꽤 치명적이에요. 씨로 번식을 못 하니까 가지를 잘라 다른 나무에 접붙이는 방법밖에 없거든요.

1870년에 미국 농무부(USDA)가 바이아에서 이 나무 12그루를 들여왔어요. 당시 농무부 정원 책임자였던 윌리엄 손더스가 워싱턴 D.C. 온실에서 이 나무들의 눈을 다른 오렌지 묘목에 접붙여 키웠다고 해요.

여기서 등장하는 사람이 엘라이자 티베츠예요. 남편 루더 티베츠와 함께 막 생겨난 정착촌이던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여성이었죠.

1873년, 손더스가 키운 접목 묘목 두 그루가 티베츠 부부에게 보내졌어요. 워싱턴에서 서부 끝까지, 기차와 역마차를 갈아타는 긴 여정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지역 역사가 에스더 클로츠는 나무가 1873년 12월 10일에 도착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들었어요. 다만 심은 시기를 조금 다르게 적은 자료도 있어서, 날짜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엘라이자가 설거지물까지 모아서 이 나무들에 줬대요. 건조한 이 동네에서 물이 얼마나 귀했을지 생각하면, 이건 진짜 정성이에요.

몇 년 뒤 열린 열매는 크고 달고, 씨도 없었어요. 이웃 농부들이 접붙일 가지를 얻으러 몰려들었고, 리버사이드 일대에 오렌지 과수원이 빠르게 퍼져 나갔죠.

그래서 남캘리포니아에 Citrus Belt라는 말이 생길 만큼 시트러스 재배가 커졌다는 거예요. 지금 마트에서 집어 드는 네이블 오렌지 상당수가 이 두 그루의 후손이라는 설명이 그래서 나와요.

물론 모든 네이블 오렌지가 딱 이 한 그루에서 나왔다고 단정하는 건 조심해야 해요. 다른 경로로 들어온 네이블도 있었고, 기원을 다르게 보는 연구자도 있거든요.

그럼 두 그루는 어떻게 됐을까요. 한 그루는 1903년 5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리버사이드에 왔을 때 미션 인 앞마당으로 옮겨 심는 데 직접 참여했어요.

대통령까지 나서서 나무 이식을 했다니, 당시 이 동네가 오렌지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보이죠. 근데 그 나무는 오래 못 버티고 1920년대 초에 죽었어요.

사망 시기는 1921년이라는 자료와 1922년이라는 자료가 엇갈려요. 어쨌든 지금 남아 있는 건 한 그루뿐이에요.

살아남은 나무는 1902년 무렵 지금 자리인 매그놀리아와 알링턴 교차로 모퉁이로 옮겨졌어요. 1920년에는 엘라이자 티베츠를 기리는 명판도 세워졌고요.

1932년 6월 1일에는 캘리포니아 주 역사 랜드마크 20호로 지정됐어요. 주 전체 랜드마크 번호 중에서도 앞쪽이라, 초창기에 선정된 곳이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나무가 그냥 버틴 건 아니에요. 줄기가 병으로 망가져 가던 시기에, UC 과학자들이 주변 묘목을 줄기에 이어 붙이는 inarching이라는 접목법으로 살려냈다고 해요.

지금도 관리는 UC 리버사이드와 시 공원국이 함께 맡고 있어요. UC 리버사이드의 뿌리인 시트러스 시험장(Citrus Experiment Station)이 1907년에 세워진 것도 결국 이 산업 덕분이었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 나무에 하얀 천이 씌워졌다가, 2019년에는 곤충 차단망을 친 텐트 구조물로 바뀌었어요. 감귤 그린병(citrus greening)을 옮기는 해충으로부터 지키려는 거예요.

처음 텐트 친 모습 봤을 땐 좀 웃겼어요. 무슨 VIP 환자 격리 병동 같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게 맞는 대응이에요. 접붙이기로만 번식하는 나무라 원본의 상징성이 크고, 병 하나가 산업 전체를 흔들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에서 제일 마음에 남는 게 엘라이자 티베츠라는 사람이에요. 대단한 지주도 아니고, 새 정착지에서 나무 두 그루를 끝까지 살려낸 한 여성이었잖아요.

역사책은 보통 철도나 대농장, 대통령 이름을 먼저 적어요. 근데 이 동네 경제의 첫 단추는 설거지물 들고 마당에 나가던 사람이 끼운 셈이에요.

공공기관이 들여오고, 개인이 키우고, 대학이 연구로 지켜온 구조라는 것도 흥미로워요. 누구 하나만 빠졌어도 지금 같은 시트러스 지도는 없었을 것 같아요.

혹시 근처 지나갈 일 있으면 잠깐 차 세우고 봐도 좋아요. 화려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15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나무라는 걸 알고 보면 느낌이 달라요.

저라면 겨울에 네이블 한 봉지 사 들고 가서, 철책 앞에서 하나 까먹어 볼 거예요. 이 나무 후손을 원조 앞에서 맛보는 거, 꽤 괜찮은 경험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