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람도 아닌데 끝까지 봤다, AI 브이로그의 놀라운 수준 - Los Angeles - 1

요즘 유튜브를 보다 보면 AI로 만든 동영상이 정말 많이 나온다. 유행을 타기 시작한게 벌써 2년은 되는거 같다.

처음에는 볼수록 신기했다. 고양이가 사람처럼 말하고, 역사 속 인물이 말을 하고, 몇 줄 입력하면 영화 같은 장면까지 만들어낸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싶었다.

그런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솔직히 좀 질린다.

특히 조잡하게 만든 AI 영상만 계속 올리는 이름도 처음 보는 작은 채널들이 추천에 뜨면 요즘은 몇 초 보지도 않는다.

얼굴과 입은 움직이는데 표정에는 영혼이 없다. 내용도 어디서 본 것을 AI 음성으로 읽어주는 수준이다.

처음에는 몇 번 봐줬는데 이제는 비추천 누르고 내 유튜브 추천에 다시 안 뜨게 하기 바쁘다.

AI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이상 볼거리가 되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영상 하나는 좀 달랐다.

'조선시대에 브이로그가 있었다면?'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이 실제 사람이 되어 자기 일상을 브이로그로 찍는다는 설정이다.

처음에는 또 AI 영상이네 하고 별 기대 없이 눌렀다.

그런데 보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다.

미인도 속 주인공이 그림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것 같은 모습으로 한양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요즘 여자들이 카메라 들고 "오늘은 여기 한번 가볼게요" 하는 것처럼 조선시대 여인이 자기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발상이 괜찮은데 갑자기 손님이 한 명 등장한다.

모나리자다. 여기서 부터 발상이 남다르다. 모나리자가 왜 조선시대에 나타나는가?

신윤복의 미인도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만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데,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둘이 함께 한양을 돌아다니고 경복궁도 구경한다.

생각해 보면 미인도 속 여자도 모나리자도 우리가 수백 년 동안 얼굴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림 속에서는 늘 같은 표정으로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런 두 사람이 그림 밖으로 나와 같이 돌아다닌다는 상상 자체가 재미있었다.

더 웃겼던 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다음이다.

조선시대식 언박싱까지 한다.

언박싱이라고 하면 택배 상자 뜯으면서 화장품이나 전자제품 보여주는 요즘 유튜버가 먼저 떠오르는데 그걸 조선시대로 가져가 버렸다.

여기서 AI의 장점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진짜 재미있는 AI 콘텐츠는 "AI로 이것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기술을 자랑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먼저 재미있는 상상을 하고, AI는 원래 촬영할 수 없는 그 상상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신윤복에게 미인도 모델을 데리고 브이로그를 촬영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모나리자를 프랑스에서 조선 한양으로 데려올 수도 없다.

그런데 AI를 이용하면 그 황당한 상상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이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AI가 앞에 나오는 영상은 몇 번 보면 질린다.

그런데 사람의 아이디어가 앞에 있고 AI가 뒤에서 받쳐주는 영상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것도 "AI 기술 대단하다"가 아니었다.

'누가 미인도하고 모나리자를 만나게 할 생각을 했지?'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요즘 AI 영상이 너무 쏟아져서 오히려 웬만한 것은 놀랍지도 않은데, 이렇게 제대로 아이디어를 입혀 놓으니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결국 AI 시대에도 중요한 건 사람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느냐인가 보다.

AI 영상에 질려서 비추천 누르기 바빴던 내가 끝까지 봤으니, 적어도 이 영상은 뭔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