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에 친구랑 마트에 갔다가 둘 다 멈춰 섰어요. 한쪽 통로엔 해골이랑 호박 바구니가 쌓여 있는데, 바로 옆 통로에선 반짝이는 트리 조명이 깜빡이고 있었거든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핼러윈도 안 끝났는데 벌써 징글벨이냐." 저도 웃었지만, 솔직히 이 장면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이런 현상을 미국에선 '크리스마스 크리프(Christmas creep)'라고 불러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슬금슬금 앞으로 기어 들어온다는 뜻이죠.
이 말이 언제 생겼나 찾아봤어요. 신조어 사전 Word Spy가 찾은 가장 이른 용례는 1986년 LA타임스 기사입니다.
노동절 무렵에 벌써 크리스마스 판촉 시리얼이 마트 진열대에 올라왔다는 내용이었대요. 그러니까 이름은 80년대생이에요.
그런데 현상 자체는 훨씬 오래됐습니다. 1950년대에도 추수감사절 전 크리스마스 광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해요.
제일 재밌는 건 1939년 이야기예요. 그해 추수감사절이 11월 30일로 늦게 잡히자, 쇼핑할 날이 너무 짧다는 소매업계의 걱정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당겨 11월 23일로 옮겨버렸어요. 발표는 그해 8월이었고요.
반응은 난리였습니다. 사람들은 대통령 이름을 붙여 '프랭크스기빙'이라고 비꼬았고, 주마다 옛 날짜를 지키느냐 새 날짜를 따르느냐로 갈라졌어요.
그래서 결과는요? 두 해 동안의 판매 데이터를 봤더니 날짜를 당긴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답니다. 결국 1942년부터 원래 날짜로 되돌렸고, 의회가 11월 넷째 목요일로 법에 못 박았어요.
물론이죠, 정부가 달력만 바꾸면 경기가 살아날 거예요(아니었죠). 저는 이 대목이 제일 통쾌했는데, 소비자 지갑은 결국 소비자가 연다는 얘기니까요.
자, 그럼 요즘 가게들은 왜 이렇게 서두를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파는 기간이 길수록 팔 기회가 많아지니까요.
업계에선 10월부터 12월까지를 '골든 쿼터'라고 부른다고 해요. 1년 장사의 승부가 여기서 갈린다는 거죠.
경기가 나쁠 때 이 경쟁은 더 심해졌어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크리스마스 크리프가 한층 빨라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손님 지갑이 얇아지면 가게는 더 일찍, 더 오래 붙잡으려 하니까요.
여기에 군비경쟁 같은 구조가 붙습니다. 한 곳이 먼저 트리를 내놓으면 옆 가게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걸 상술로만 보기엔 손님들도 한몫합니다. 작년 전미소매업협회(NRF) 조사에서 응답자의 42%가 11월 전에 연말 쇼핑을 시작하겠다고 했어요.
이유 1위는 예산을 나눠 쓰려고, 2위는 막판 스트레스를 피하려고였습니다. 듣고 보니 저도 할 말이 없더라고요.
같은 조사에서 1인당 연말 예상 지출은 890.49달러였어요. 이 정도면 한 달에 몰아 쓰기보다 석 달로 쪼개고 싶은 마음, 이해가 갑니다.
핼러윈도 만만치 않아요. NRF가 지난달 내놓은 올해 전망에 따르면 핼러윈 지출 예상액은 135억 달러로, 작년 기록인 131억 달러보다 많습니다.
1인당으로는 115.14달러라고 하네요. 장식에만 43억 달러가 들어간다니, 두 명절이 같은 매장 공간을 두고 싸우는 것도 이상하지 않죠.
지난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10월에 트리 세우는 집 보면 좀 너무하지 않나요?" 솔직히 저도 예전엔 그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방식을 나란히 놓고 따져봤어요. A는 추수감사절이 끝나야 장식을 꺼내는 전통파, B는 핼러윈 다음 날 바로 전구를 다는 얼리버드파입니다.
A의 장점은 명절마다 제 순서를 지킨다는 거예요. 추수감사절이 크리스마스의 대기실이 되지 않죠.
B의 장점은 현실적이에요. 인기 장식은 일찍 동나고, 늦게 가면 남은 것만 고르게 됩니다.
사막 동네 사는 사람으로서 하나 더 보태자면, 11월 초는 아직 낮에 꽤 더울 때가 많아요. 땡볕에 사다리 올라가 전구 다는 일은 생각보다 고됩니다.
친구는 끝까지 A파였어요. "그럼 7월에 크리스마스 세일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이 질문에는 저도 대답을 못 했고요.
생각해보면 우리 같은 이민자 입장에선 이 계절이 길어지는 게 꼭 나쁘지만도 않아요. 한국에 선물 소포를 부치려면 어차피 넉넉히 일찍 준비해야 하거든요.
결국 이건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가게는 팔고 싶은 만큼 일찍 팔고, 손님은 사고 싶을 때 사면 그만입니다.
1939년이 보여준 것도 그거죠. 위에서 날짜를 정해준다고 사람들 마음까지 따라오진 않습니다.
제 선택은 이래요. 쇼핑은 B처럼 일찍, 장식은 A처럼 추수감사절 이후에. 할인과 재고는 챙기고, 호박한테 예의도 지키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세요? 올해 트리는 언제 꺼낼 생각인지, 댓글로 한번 겨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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