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온지 10년 그리고 시애틀에 산 지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비가 자주 오고, 구름이 낮게 깔린 회색 하늘이 이 도시의 기본 배경이지만, 그 속에서 딸을 키우는 시간은 참 따뜻하고 다채로웠습니다.
미국에서, 특히 미국에서 딸을 키운다는 건 한국에서의 육아와는 여러모로 결이 다릅니다.
가장 먼저 느낀 건 교육의 방향이에요.
한국에서 자랄 땐 성적표가 인생의 성적표처럼 느껴졌고, 방과 후 시간은 학원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이가 무엇을 잘하느냐보다 무엇을 좋아하느냐를 먼저 묻습니다.
숙제를 안 해도 "왜 안 했어?"보다 "어려운 점이 있었니?"가 먼저 나오죠. 이곳 부모들은 아이의 성적보다 자존감과 독립심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부모와 아이의 대화 방식도 달라요. 한국에서는 부모가 '윗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아이와 거의 동등하게 대화합니다.
딸이 "엄마, 제 생각은 달라요"라고 말해도, 그 의견을 꺾기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받아들입니다.
처음엔 조금 낯설었지만, 이게 아이를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더군요.
또, 시선보다 법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도 큰 차이입니다.
한국에서는 학교와 이웃, 친척의 평가가 중요하지만, 미국에서는 체벌은 금지되어 있고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직접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훈육 하나에도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시애틀은 자연과 교육이 손잡고 있는 도시입니다.
주말이면 학원 대신 국립공원에 가서 산책하고, 해변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산책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비 오는 날에도 레인코트를 입고 숲길을 걷는 게 일상이죠. 이런 경험은 교실에서 배우지 못하는 호기심과 모험심을 키워줍니다.
그리고 '성공'의 의미도 다릅니다.
한국에서라면 좋은 대학과 안정적인 직장이 목표지만, 시애틀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가치입니다.
그래서 딸에게 "네가 잘해야 해"보다 "네가 행복해야 해"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결국 이곳에서 딸을 키운다는 건 아이가 자신을 믿고 스스로 선택하며 실패조차도 성장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어른이 되도록 옆에서 함께 걷는 일입니다.
부모는 조종사가 아니라, 같은 길을 걸어주는 동행자가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