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애틀에서 살게된지 20년이 넘게 되었지만 한국에서 살때 우리집은 서울 종로구였습니다.
종로쪽은 지금 청계천 그리고 많은상권과 사무실지역으로 유명하지만, 제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그 뒤로 이어진 뒷골목들입니다.
퇴근 무렵이면 조그만 간판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고, 어른들이 즐겨 다니던 먹자골목의 풍경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골목 끝까지 이어진 포장마차와 작은 식당들에서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웠습니다.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가서도 나는 친구들과도 종종 이런 골목을 탐험하듯 돌아다녔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조금 있으면 떡볶이, 순대, 어묵 국물로 충분히 행복해졌죠.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닭꼬치나 생선구이집까지 찾아가 식사를 하며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습니다. 그런데 종로구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먹자골목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강동구 성내동의 주꾸미골목은 봄이 되면 매콤한 철판 주꾸미 냄새로 발길을 붙잡습니다. 종로구 수표로길의 굴보쌈골목은 김치 속에 굴을 듬뿍 넣어 싸 먹는 그 맛이 일품이죠. 남대문시장길의 갈치조림골목에서는 커다란 냄비에 갈치와 무를 푹 졸인 향이 골목 전체를 감쌉니다.
또 동대문생선구이골목은 점심시간이 되면 연기와 고소한 냄새가 피어올라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용산구 삼각지의 대구탕골목에서는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오장동흥남집 본점의 평양냉면은, 고향을 떠난 지금도 문득 생각나면 입안에 군침이 도는 맛입니다.
그 시절 먹자골목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빽빽하게 들어선 상점들, 단골손님과 사장님이 서로 안부를 묻는 정겨운 인사, 옆 가게에서 반찬을 나눠주는 풍경까지... 거기에는 사람 냄새와 음식 냄새가 함께 있었죠.
하지만 지금 제가 사는 미국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맛집과 대형 마켓은 많지만, 한국처럼 상점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골목길은 보기 힘듭니다. 주차장이 넓은 쇼핑몰과 드라이브스루 문화 속에서는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음식 냄새와 북적임을 느끼기가 힘들죠.
가끔 유튜브나 TV에서 한국의 먹자골목 장면이 나오면 화면 속 냄새까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글지글 부치는 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 소주잔을 기울이며 웃는 사람들... 그 속에 있는 나를 상상하면 단순히 '먹고 싶다'가 아니라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아마 제가 먹자골목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곳이 단순한 맛집 모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종로구 뒷골목에서 시작된 제 추억은 서울의 주꾸미골목, 굴보쌈골목, 갈치조림골목, 생선구이골목, 대구탕골목, 그리고 오장동흥남집까지 이어져 제 마음속에 하나의 긴 여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국에서 이 풍경을 직접 다시 볼 수는 없지만 기회가된다면 그 골목들을 걸으며 그 시절의 맛과 한국의 정을 다시 느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