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길에 초등학교 앞을 지나 걷는데, 운동장 펜스에 "Read 20 minutes a day"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시월 저녁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니 글씨가 유난히 또렷해 보였습니다. 그 앞에서 문득 요즘 다른 주에서 자꾸 들려오는 "미시시피의 기적"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미시시피는 오랫동안 교육 순위 맨 아래쪽에 있던 주입니다. 그런데 2024년 전국학력평가(NAEP)에서 4학년 읽기 평균이 219점으로 나왔습니다. 전국 평균 214점보다 높은 점수입니다.
4학년 읽기에서 전국 평균을 넘어선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2013년부터 2024년 사이 4학년 읽기와 수학 성장 폭도 전국에서 가장 컸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기적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을까요.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2013년에 통과된 읽기 기반 진급법(Literacy-Based Promotion Act)입니다. 이 법은 2014-15학년도부터 시행됐습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3학년 말 읽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4학년에 올라가지 못하고 3학년을 한 번 더 다닙니다. 이른바 3학년 유급제입니다.
처음 기준은 5단계 중 2단계였습니다. 2016년 법 개정으로 2018-19학년도부터는 3단계 이상을 받아야 진급할 수 있게 기준이 올라갔습니다.
시험 기회는 한 번이 아닙니다. 봄 시험에서 떨어지면 5월과 6월에 두 번 더 재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학생, 영어 학습자, 이미 유급된 적이 있는 학생 등은 "정당한 사유" 예외로 진급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붙잡아 두는 제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최근 수치를 보면 2024-25학년도 3학년 읽기 시험 통과율은 재시험 포함 85%였습니다. 첫 시험만 놓고 보면 77.3%로 역대 최고였습니다. 실제로 유급된 3학년은 6%였습니다.
2018-19학년도에는 3학년의 10%가 유급됐으니 그 뒤로 비율이 꾸준히 내려온 셈입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열 명 중 한 명이라니 꽤 놀랐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대목이 나옵니다. 성적이 오른 게 유급 때문인가, 아니면 유급 덕분에 시험 보는 아이들 구성이 달라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비판하는 쪽 논리는 이렇습니다. 읽기가 약한 아이들이 3학년에 남으면 4학년 NAEP 응시자는 상대적으로 잘하는 아이들, 그리고 한 살 더 먹은 아이들로 채워집니다. 그러면 평균이 올라가는 착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토머스 포드햄 연구소에 실린 한 분석이 이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나중에 응시자 평균 나이를 비교해 보니 유급이 4학년 성적 상승의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정정했습니다.
반대쪽 근거도 있습니다. 커스틴 슬룽고르 머마와 마커스 윈터스 연구진은 2014-15학년도 3학년 중 합격선 바로 위아래에 있던 학생들을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유급된 학생들이 6학년이 됐을 때 영어(ELA) 점수가 상당히 높았다는 것입니다. 수학 점수, 결석, 특수교육 판정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 비교는 같은 학년 기준이라 유급된 아이들이 1년 더 배운 상태라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시시피는 3학년 이전인 유치원에서 2학년 사이에도 유급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유급제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법에는 읽기가 부족한 아이에게 개별 읽기 계획을 세우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교사 자격시험에 기초 읽기 교수법 시험을 추가했고, 학교에 읽기 코치를 보내 수업을 바꾸는 작업도 같이 진행됐습니다. 파닉스 중심 교육으로 방향을 튼 것도 이 흐름입니다.
연구 흐름도 엇갈립니다. 과거 연구는 유급이 별 도움이 안 되고 장기적으로 해가 될 수 있다는 쪽이 많았습니다.
최근 10년 연구에서는 어린 학년에서 집중 지도와 함께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붙잡아 두는 것 자체보다 그 1년 동안 무엇을 해주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20개 넘는 주가 읽기 수준이 안 되는 3학년을 유급시키도록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법을 두고 있습니다. 미시시피가 하나의 본보기가 된 셈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져 한 해를 다시 다닌다는 건 숫자로 설명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특히 집에서 한국어를 쓰는 가정이라면 영어 학습자 예외가 적용되는지 미리 학교와 이야기해 두는 게 좋겠습니다. 예외 조건과 절차는 주 교육부 안내 자료에 정리돼 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부터 3학년 사이라면 학교에서 보내는 읽기 평가 결과를 그냥 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개별 읽기 계획이 세워졌는지, 어떤 지도를 받는지 담임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맞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유급제는 경고등 역할을 하는 장치입니다. 기적의 본체는 그 경고등이 켜지기 전에 교실에서 매일 쌓은 읽기 수업이라고 봅니다.
유급만 따로 떼어 다른 주에 옮겨 심으면 아이들 상처만 남을 수 있습니다. 코치, 교사 연수, 조기 진단이 함께 가야 한다는 쪽에 저는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현수막을 다시 봤습니다. 하루 20분이라는 문장이 어떤 법 조항보다 정직해 보였습니다.
오늘 저녁엔 아이든 손주든 옆에 앉혀 놓고 책 한 권 같이 펼쳐 보시면 어떨까요. 숫자 논쟁은 어른들 몫이고, 아이에게 필요한 건 결국 옆에서 읽어 주는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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