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이 되니 집에만 있는 것보다 가끔씩 여행을 떠나는 게 건강에도, 마음에도 참 좋습니다.
저는 캘리포니아 빅터빌에서 살고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시카고에 사는 동생 집에 다녀왔습니다. 서로 나이가 드니 예전처럼 자주 보기가 힘들지만 이번 기회에 며칠 머물며 옛날 이야기도 하고, 시카고 구경도 할 겸 시간을 냈습니다.
시카고에 도착해서 처음 느낀 건, 역시 도시의 스케일이 달랐다는 겁니다.
빅터빌은 사막지역에 있는 소박한 지역인데, 시카고는 큰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고, 거리마다 활기가 넘쳐나더군요. 무엇보다도 동생이 저를 데리고 간 곳은 '시카고 리버워크(Chicago Riverwalk)'라는 곳이었는데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니 강을 따라 배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그냥 유람선 정도겠거니 했는데,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관광객들이 타는 크루즈 배,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즐기는 작은 식당 배, 심지어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꾸며진 배도 있더군요. 동생이 설명하기를, 시카고는 건축물이 유명해서 관광용 보트 투어를 타면 시카고 강을 따라가며 건물들을 설명해준다고 합니다.
저는 나이가 있다 보니 건축보다는 그저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배들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70평생을 살면서 강에서 오가는 배를 이렇게 가까이서, 도시 한복판에서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지나갈 때마다 강 표면이 반짝이고, 그 위로 햇빛이 부서지는 모습이 참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빅터빌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동생은 저를 위해 유람선 티켓도 끊어주었습니다. 강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시카고 다운타운을 구경하는 기분은 또 색달랐습니다.
배 위에서 바라본 시카고는 육지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물 위에 비친 고층 빌딩의 그림자가 강물에 흔들리며 춤을 추고, 다리들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강을 가로막은 다리들이 천천히 올라가는 장면은 꽤 장관이었습니다.
관광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을 하는데, 제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동생이 옆에서 조금씩 풀어 설명해줬습니다. "형, 저 빌딩이 1920년대에 세워진 거야"라든가 "저 다리는 예전에 세계에서 제일 바쁘던 다리였어" 같은 얘기를 들으니, 시카고라는 도시가 그냥 큰 도시가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가 쌓인 곳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 위에서 시카고 피자를 먹는 사람들도 보였는데, 그 모습이 참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저도 동생이 챙겨온 샌드위치를 꺼내어 씹으며 강바람을 맞으니, 순간 마음이 아주 젊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일흔이 맞나? 그냥 오십쯤 된 것 같다" 싶을 만큼 기분이 상쾌하더군요.
여행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같은 미국 땅인데, 사막 기운 가득한 빅터빌에 있다가 이렇게 시카고 강가에서 배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낯설고 신선했습니다.
동생이 "형, 나이 들어서 이렇게 같이 구경 다니니 좋지?"라고 묻길래, 저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시간을 더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간의 시카고 여행을 마치고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오는 길,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저 평범하게만 보였지만, 제 마음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걸 경험할 기회가 줄어들지만, 이번처럼 용기를 내서 떠나면 아직도 배울 게 많고 느낄 게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카고 강에서 본 배들은 제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삶이 충분히 흥미롭고 즐겁다는 걸 보여준 상징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제 빅터빌에 돌아와 다시 농장일을 하는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시카고 강을 오가던 배들의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앞으로 제 노년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