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빠져 지냈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나이가 좀 들고나니 커피보다 녹차가 더 좋아졌습니다.
커피의 그 빠른 각성과 또렷해지는 느낌의 여운이 제겐 너무 강하게 다가오더군요. 몸이 알아서 말립니다.
대신 녹차 한 잔이 주는 맑고 부드러운 감각이 요즘 제 아침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 과수원과 텃밭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주방으로 발이 갑니다. 물을 데우고, 잎차를 조심스레 우려내죠.
첫 모금을 넘기면 그 고요한 기운이 가슴 안쪽으로 스며듭니다.
정신이 맑아지면서도 흥분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그게 참 신기합니다.
녹차에 들어 있는 성분들을 하나하나 알아보니, 왜 제 몸이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먼저 카테킨이라는 성분이 있습니다. 이게 녹차의 쌉쌀한 맛을 내는 동시에, 몸 안에서는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합니다.
세포를 보호하고, 염증도 줄여준다는 얘기지요. 카테킨 덕분인지 요즘 들어 한결 몸이 가볍습니다.
그리고 녹차에 들어있는 테아닌 성분은 뇌에 작용해서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고 합니다.
집중은 되면서도 마음은 평온한 그 미묘한 상태. 농장일 끝내고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마시는 한 잔의 녹차는 그 어떤 약보다 저를 다독여줍니다.
카페인도 적당히 들어 있어요. 커피만큼 많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과하게 자극받지 않고도 졸음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고승들이 예로부터 녹차를 즐겨 마셨던 데는 단순히 입맛이나 취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연과 하나 되는 삶 속에서 수양, 집중, 내면의 평온을 추구했는데, 녹차는 이 모든게 맞아떨어지는 '선(禪)의 음료'였기 때문이죠.
오전에도 좋고, 점심 지나고 한숨 돌릴 때도 좋고, 저녁 먹고 나서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게 참 고맙습니다.
요즘은 심어 놓은 레몬그라스를 잘라다가 녹차에 함께 넣어 마십니다.
기분이 조금 처진 날엔 생강도 몇 조각 얹고요. 그런 식으로 차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한결 여유롭고 균형 있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하루를 지탱해주는 건, 고요하게 우려낸 녹차 한 잔입니다.
어릴 땐 자극적인 맛만 찾았는데, 나이 들수록 느껴지는 맛이 참 다르더군요.
녹차의 쌉쌀한 기운 속에 숨겨진 따뜻함, 그걸 이제서야 알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