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감사 스케줄이 잡히면 내 스케줄은 거의 전쟁터다.
클라이언트는 전국 각지에 퍼져있고, 특히 자주 가는 곳이 플로리다, 텍사스, 그리고 뉴욕.
요즘처럼 화상 미팅이 익숙해진 시대라지만, 아직도 직접 만나야 풀리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난 일 년 내내 비행기 타고 여기저기 출장 다니며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기 딜레이. 내 인생에서 딜레이는 거의 고질병 수준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공항에가서 보안 검색대 줄을 뚫고 게이트 앞에서 한숨 돌리는 그 순간 전화기로 들어오는 문자.
"DELAYED."
한 시간 딜레이는 양반이다. 두세 시간 밀리면 그날 일정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한다.
렌터카 픽업 시간 바뀌고, 점심 약속은 취소, 오후 회의는 전화로 대체...
결국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효율은 제로에 수렴. 일정 다시 짜느라 밤늦게까지 노트북 붙잡고 씨름한다.
대체 이 딜레이라는 건 왜 이렇게 자주 생기는 걸까? 비행기 딜레이는 사실 날씨가 정말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특히 플로리다와 뉴욕. 플로리다는 여름철 뇌우가 일상이고, 뉴욕은 겨울 폭설, 봄비, 심지어 안개까지 딜레이에 한몫한다.
심지어 날씨가 내가 탈 공항이 아닌, 어디론가 향하는 다른 공항의 상황만 안 좋아도 영향을 받는다.
항공기 한 대는 하루에도 수차례 여러 도시를 돌며 운행되기 때문에, 뉴욕에서 오는 비행기가 늦으면 나도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두 번째 원인은 항공기 순환 문제다.
예를 들어 내가 아틀란타에서 오스틴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고 하자.
근데 이 비행기는 원래 마이애미에서 출발해서 샬럿을 거쳐 아틀란타로 오는 루트였다면?
앞선 구간 중 하나라도 늦어지면 비행기가 없어서 그날 하루 종일 꼬이는 일이 흔하다.
세 번째는 기체 정비 문제. 내가 한 번은 탑승까지 마쳤는데, 이륙 직전에 갑자기 기장이 "기술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방송하더라.
그래서 다 내리고 다시 게이트로 돌아갔다.
그때 느꼈다. 하늘을 나는 이 거대한 기계도 결국 철 덩어리, 고장도 나고 점검도 필요하다는 걸.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참아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미팅 일정 생각에 속이 탄다.
네 번째는 항공사 인력 문제.
최근 몇 년 사이, 조종사 부족, 승무원 교대 문제, 정비사 인력난까지 항공 업계도 사람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공항 자체 인프라가 부족하면 더 심각해진다.
활주로 포화, 관제탑의 처리 용량, 지상 요원 부족 등으로 출발 순서가 밀리면 아무리 기체가 준비되어 있어도 못 뜨는 거다.
아틀란타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중 하나다.
허브 공항이다 보니 환승이 많은데, 이게 딜레이에도 영향을 준다.
비행기마다 서로 얽히고설킨 타임라인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만 흔들려도 다 흔들린다.
물론 이런 딜레이 문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매번 스트레스만 받을 순 없다.
그래서 요즘은 출장 일정 짤 때 무조건 '여유시간'을 넣는다.
미팅은 도착 후 최소 3시간 뒤로 잡고, 호텔도 공항 근처로 잡는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 펼쳐 일하는 법도 익숙해졌다.
출장은 이제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일정 관리와 시간 싸움이다.
딜레이에 당하지 않으려면, 결국 내가 더 유연해져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비행기 지연 문자 받을 때마다 화난다.
시간은 금이고, 난 그 금을 매번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기분이니까.
그래도 어쩌겠나. 이게 바로 '일하는 어른'의 숙명 아니겠나.
딜레이가 일상이 된 회계사의 출장기, 오늘도 하늘을 바라보며 비행기를 기다린다.
제발 이번엔 on time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