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TV에서 봤던 다큐멘터리 중 하나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우주에 대한 낭만적인 내레이션과 함께 펼쳐지던 광활한 성운과 은하들. 그걸 보며 나는 과학이라는 게 단순히 계산과 공식의 세계가 아니라, 어떤 감성과 철학을 담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그 다큐멘터리의 이름은 ‘코스모스’, 그리고 그 진행자는 바로 칼 세이건(Carl Sagan)이었다.
칼 세이건은 단순한 천문학자나 교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과학과 인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고,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감탄과 경외를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흔히 그는 '대중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데, 이는 과장이 아니다. 수백만 명이 그의 책과 강연,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1943년에 태어나 1996년에 세상을 떠난 세이건은 짧지 않은 생애 동안 NASA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보이저(Voyager) 계획이다.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는 태양계를 벗어나고 있는 인류 최초의 인공물인데, 그 안에는 ‘골든 레코드’라 불리는 금색 음반이 들어 있다. 이 음반에는 지구의 소리, 음악, 인사말, 자연의 소리 등이 녹음되어 있다. 세이건은 이 음반의 기획과 제작을 주도했는데, 인류가 지구 밖 생명체에게 건네는 최초의 인사말을 만든 셈이다.
하지만 세이건을 정말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과학을 ‘아름답게’ 말할 수 있었던 능력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마치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종교적인 체험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별의 먼지로 만들어졌다.” 이 짧은 문장은 과학적 사실이면서도 동시에 인간 존재의 신비함과 연결된다.
세이건의 대표 저서 『코스모스』는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부 이상이 팔렸고, 60개 언어로 번역됐다.
그는 이 책에서 단순히 천문학 지식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왜 우주를 바라봐야 하는지, 과학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는 질문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의 문장은 차분하면서도 감동적이고, 철학적이면서도 대중적이다.
세이건은 과학을 신격화하지 않았고, 종교를 비하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과 신념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그 회의조차도 따뜻하고 포용적이었다. 그는 “엄청난 주장에는 엄청난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단순한 과학자 이상의 지적 모범을 보여준다.
그가 떠난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유튜브와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현대 과학자 중 누가 그처럼 우주의 광활함을 감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칼 세이건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우리에게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경외심으로 별을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그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별에서 왔고, 언젠가 다시 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