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에서 미들스쿨 다니는 아들을 키우는 나는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있던 오후에 전화가왔다.
발신번호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 번호. 받자마자 들려온 목소리는 학생지도 담당자였다. 첫 마디부터 심장이 철렁했다.
"아드님이 오늘 친구들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했습니다. 학교 규정상 bullying에 해당될 수 있는 행동이라 바로 연락드렸습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집에서는 밝고 장난끼 많은 아이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통화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한 친구의 외모를 놀리고 운동장에서 특정 친구를 일부러 팀에서 배제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
담당자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사건 경위를 설명했고, 통화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자세한 상황과 학교의 후속 조치를 정리한 이메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이메일이 도착했다.
거기에는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 목격된 행동, 피해 학생이 받은 영향 왜 이 행동을 bullying으로 판단했는지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피해 학생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나오지 않았지만 상황은 충분히 선명했다.
마지막에는 앞으로의 조치가 정리돼 있었다. 아들은 반성문을 쓰고 피해 학생에게 직접 사과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함께 아들과 긴 대화를 했다.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친한 친구들이 하는것처럼 따라서 약한 친구를 놀리다가 자기가 한말로 친구들이 웃으면 기분이 좋았고 그게 자신이 인정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가 잘못된 방식으로 친구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려 했다는 건 이민와서 어떤 불안감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더 정확히 들었다. 피해를 본 친구의 부모에게도 사과의 뜻을 전하고, 아들과 함께 직접 만나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요청했다.
학교에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가 '반성문'을 쓰고, 상담 선생님과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했다.
한국과 미국의 미들스쿨 bullying은 형태와 대응 방식에서 차이가 크다.
한국은 주로 같은 반 친구들끼리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구조라 집단 따돌림, 별명 부르기, 무시하기 같은 지속적·관계 중심의 괴롭힘이 많다. 피해 사실이 은밀하게 진행돼 교사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교실 이동식 수업이라 고정된 집단보다 특정 시간·장소에서 발생하는 언어폭력, 신체적 밀침, SNS 괴롭힘이 흔하다. 발견 시 학교 규정에 따라 즉시 관리자 개입, 학부모 연락, 상담·징계 절차가 진행된다.
또한 미국은 기록과 절차를 중시해 이메일, 전화, 앱 알림 등으로 공식 통보하며, 재발 시 학군 차원에서 징계나 전학 조치까지 가능하다.아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꾸준히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덴버의 맑은 하늘을 보면서, 우리 아이의 마음도 이렇게 맑아질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사건이 부끄럽고 속상한 기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