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살다가 허스키 키우는 얘기를 블로그에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원래 저는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친구네 허스키가 새끼를 낳았는데 저한테 한 마리를 주는 바람에 제 인생이 갑자기 확 바뀌어버렸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혼자 사는 것도 아직 정신없는데 대형견 집사까지 된 거예요.
처음 만났을 때 강아지인데도 눈빛이 좀 맹하면서도 나름대로 날 똑바로 쳐다보는데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때 직감했죠 '아 얘는 내 가족이 되겠구나'
허스키랑 같이 살면서 느낀 건 겉모습 때문에 오해받는 게 많다는 거예요. 다들 늑대 같다 영화 속 주인공 같다 얘기하는데 막상 집에서 보면 그냥 애교 덩어리입니다. 방에 앉아 있으면 슬쩍 다가와서 무릎에 머리를 툭 올리는데 순간 피곤이 싹 풀립니다.
터프한 얼굴인데 속은 완전 애기예요 ㅋㅋ.
게다가 에너지가 넘쳐서 산책 나가면 저까지 덩달아 달리게 됩니다. 원래 운동이랑은 거리가 멀었는데 요즘은 얘 덕분에 러닝이 일상이 됐어요.
솔직히 매일같이 끌려 나가 뛰다 보면 신기하게 하루가 좀 더 힘차게 시작됩니다.
근데요 힘든 점도 진짜 많습니다 ㅠㅠ..
허스키는 산책이 하루 한두 번으론 부족해요. 조금만 줄이면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쿠션은 이미 몇 개 털리고 신발도 몇 켤레 사라졌습니다. 털은 또 얼마나 빠지는지 청소기를 하루에도 몇 번은 돌려야 하는데 그래도 옷에 털이 붙어 있고.... 룸메이트는 아예 검은 바지를 포기했을 정도예요.
똑똑하긴 한데 고집이 장난 아니에요. 앉아 같은 기본 훈련도 알아들으면서도 "지금 하기 싫은데?"라는 표정을 짓는데 그럴 땐 웃기면서도 답답합니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룸메이트가 있어서 산책도 번갈아 가며 시킬 수 있고 또 길 건너 이모가 살고 있어서 장거리 여행 갈 때는 맡길 수 있거든요. 솔직히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진작에 지쳤을지도 몰라요.
허스키는 혼자 사는 초보가 키우기엔 무거운 견종이 맞습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투덜대다가도 하루 마무리할 때 제 옆에 딱 붙어서 누워 있는 모습 보면 다 잊게 돼요.
뭔가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거든요
시애틀은 비도 자주 오고 하늘이 흐린 날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날에도 허스키랑 같이 뛰다 보면 기분이 훨씬 나아져요.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그 파란 눈빛이 번쩍할 때면 하루 피로가 다 풀립니다.
사실 털 날리고 사고 치고 훈련 안 먹히는 거 다 힘들죠. 그런데도 이상하게 얘 없이는 하루가 허전할 것 같아요.
이제는 그냥 가족이 된 거예요.
허스키를 키우고 싶다는 분이 있다면 운동량이랑 털 관리랑 인내심, 이 세 가지만 각오할 수 있다면 허스키는 평생 옆을 지켜주는 최고의 친구가 됩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이 고생이지만 동시에 매일이 행복이에요.